'뿌리 깊은 나무'로 유명한 작가 이정명의 4년 만의 신작 '선한 이웃'이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왔다. 출판계에선 대통령 탄핵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작년 말 무렵부터 '독재',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 '촛불 혁명 이후'같은 카테고리를 단 책들을 많이 출판했다. 부당한 권력에 고통 받았던 국민들의 성찰과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까닭이었다.
이 소설도 그런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 문학 분야에서 지금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소설은 <선한 이웃>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정명은 이 세상이 누군가의 연출로 이루어진 하나의 연극 무대라는 큰 설정 아래, 선하지만 결코 선하지 않은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을 각 장마다 포진해 놓는다. 아니, 주인공으로 등장 시킨다. 독자는 그 인물들의 행적을 쫓는 동안 끊임 없이 혼돈 속에 빠지고, 결국은 '누가 진정 선한가'에서 출발하여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독재와 항쟁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기 위해 깔아둔 설정에 불과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정명의 소설은 기존의 이런 류 소설과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르다. 반면 김기준, 이태주, 김진아, 관리관, 그리고 최민석까지. 각 인물들은 다르면서도 분명히 같은 점이 있다. 무대 위에 세워진 인물들의 실감 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독백이 이 연극이 허름한 무대라도 세워져야만 하는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연극은 서술자 없이 인물의 대사와 행동 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물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먼저 김기준,
1980년대 한국,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위가 한창인 시기, 운동권 궤멸 임무에 투입된 정보 공작원 김기준은 '최민석'을 잡기 위해 잠복 근무에 나선다. 최민석,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대규모 연합 시위와 집회 등을 이끄는, 운동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기준은 유달리 최민석 검거에 집착했다. 이유를 묻는 관리관에게 기준은 이렇게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