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인간에 관해 우리가 갖는 기억은 모두 같을까? 그리고 그것은 모두 진실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그 사람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일까? 그 기억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정말?


종종 뉴스에서는 범죄자의 이웃들이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의 본모습이냐고 묻는다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 모두가 그의 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소설 '악녀에 대하여'는 한 여자 사업가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스물 일곱 명의 주변 인물들이 증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와 같이 서로 자신이 기억하는 '기미코'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 여자, 그런 얍삽한 짓을 여기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하고 다녔던 것 아닙니까? p.77 


도미노코지 기미코에 관해서? 다들 악녀라는 식으로 떠드는데 난 정말 용서할 수가 없어, 그 사람들 p.301


누군가는 그녀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천사'로. 어떤 이는 세상 다신 없을 '악녀'로 묘사한다. 한 인간에 관해 이렇게 극단적으로 평이 갈린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심지어 친 자식들 간에도 의견이 다르니, 더욱 '기미코'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녀의 본모습에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린다. 혼란스럽다.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 퍼즐을 맞추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조각이 서로 잘 맞는다 싶다가도 다음 인터뷰에서 아귀가 틀어져 버리고 만다.


생전의 기미코의 행적이 너무나 선명해서, 책을 읽는 어느 지점부터는 이 주변인의 증언이 정말 진실일까, 하는 태초의 의문이 생겨버리기도 한다. 이 스물 일곱 명 중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슬아슬한 진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독자들은 어느새 날카로운 시각으로 이들을 면밀히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인터뷰어(intervierwer)'의 존재에 관해서도 의문이 든다! 독자를 대신해 그녀 주변의 인물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그녀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의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주간지에 실을 가십을 위해서? 그리고 줄곧 주간지의 기자처럼 행동하다가 왜 어느 대목에선(p.171) 작가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일까?


선생님이 왜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셨는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쓰신 작품을 나도 꽤 많이 읽었는데 주인공은 항상 훌륭한 분들이었잖아요? p.171


어서오세요, 누구십니까, 몸이 불편하신 분은?

아, 주간지 취재? p.289


혹시 기미코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인가? 쌍둥이인가? 다 다른 사람을 만난 건 아닐까? 


이런 끝도 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소설의 전개가 늘어짐 없이 빠르고, 짜임새가 탄탄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녀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만날 수록, 나는 그녀에게 뭔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정말 악녀인지 아니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사라져 있고, 대신 혼자 아이를 낳고, 아등바등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왔을 그녀가 안쓰러워지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그녀를 스쳐갔던 남자들 전부 무책임하고 뻔뻔해서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녀에 대한 애도보다는, 왠지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하고, 그녀의 사이에서 낳았던 아이들에 대해 당당하지 못한 태도가 말이다. 차라리 기미코가 사기꾼에 빚쟁이더라도 그런 면에선 오히려 더 떳떳한 여장부지 않은가.


또 그녀가 자신의 자식 혹은 남편이 원치 않는 아이를 출산하고, 위자료를 받아갔다고 '악녀'라 칭하는 시어머니나 본처도 있어서 엥, 이거 완전 주객전도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니 한 조각이나마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사기를 당했다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악녀'라고 인터뷰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탐정이 된 심정으로 나 역시 그녀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끝내 어두컴컴한 미궁 속으로 빠지고야 말았다.


이 긴장감 넘치는 미스테리함 때문에 일본에서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는 소설 '악녀에 대하여'


베일에 싸인 그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명탐정 코난_베르무트 명대사 <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