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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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SF나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장강명의 작품을 읽고는 조금 시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대부분, 아니 전세계적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해리포터 시리즈도 겨우 읽은 사람이었다. 뭐 '룬의 아이들'이니 '반지의 제왕' 같은 것들이 아무리 인기가 있고 재밌다고 해도 나에게는 '파워포스레인저'만큼이나 유치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또 그 기이한 소재들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내 기억에는 SF소설들이 마치 도서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무렵부터 있던 것이라는 듯 먼지를 둘러쓰고 견고딕 같은 무성의한 폰트로 큼지막하게 제목을 박아놓은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읽기가 꺼려졌다. 나는 듣도보도 못한 '천리안'을 포함해 PC통신이 막 생겨나서 부흥할 때 함께 쓰여진 글들이었다.

그리고 '천리안'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SF소설의 인기도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딱히 영화, 드라마화가 되지 않은 작품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것들을 찾지 않았다. 웹소설에서야 매니아들로 인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웬만한 뚝심, 혹은 특별한 기호를 가진 작가가 아니고서야 SF소설을 쓸 일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시니컬한 사회비판으로 '제 16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에반게리온을 좋아하고 드래곤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는 그는 그런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아니 아예 내가 한 걱정들은 전혀 해보지도 않고 그냥 자기 좋은 대로 막 써보고 싶었던 대로 쓴 것 같다. 장강명 식으로다가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소설로 밥벌이를 고민하는 작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대중의 눈을 무시하고 그냥 쓰고 싶었던 SF를 썼다고? 어디서 그런 배짱이? 하는 생각들은 나만 했다. 장강명은 5년 만에 간 신혼여행지 보라카이('5년 만에 신혼여행') 에서 과연 이 '호모도미난스'가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기대하기까지 했다. (안타깝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이 작품으로 인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리스트에 문장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는 밥벌이를 고민할 지언정 대중의 눈치는 보지 않는다.' 한편, 그의 이런 기행을 믿어준 출판사 '은행나무' 역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아주 칭찬해'

      





이 소설은 책 뒤 표지에 흔하게 박히는 다른 작가, 평론가들의 추천사나 평가가 없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라. 당신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짓는 그가 바로,
너의 삶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호모도미난스다!

그냥 이런 괴상한 문구만 박아놓았을 뿐이다. 심지어 '호모도미난스'라는 글자 위에는 여섯 개의 강조점이 뿅뿅뿅, 박혀 있기까지 한다. '2016년 한겨레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이라는 수식어도 없이 그냥 '장강명' 이름 석 자만 딱, 박아 놓은 알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허례허식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 남다른 배짱!) 

그러니까 그냥 '장강명'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작품이 좋았듯이 이 것 역시 그럴 것이라는 믿음. 그의 작품을 내놓기로 작정한 출판사의 마음이 이랬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 재밌었다. 사람 마음을 말 한마디로 조종하는 신인류 호모도미난스들이 ET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별로 거부감도 없었고 중국, 한국, 일본, 거기다가 라오스나 위구르까지 넘나드는 글로벌한 스케일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읽는 내내 평범한 인간인 나는 그 곳들을 돌아다니며 그 신인류들이 벌이는 엄청난 일을 입을 헤, 벌리고 따라다녔다. (역시 사전 조사의 달인, 장강명)

팝콘 밑바닥에 숨겨놓은 이벤트 당첨권처럼 깔아둔 반전을 읽었을 때는 

     



SF소설에 대한 편견을 한 방에 날려준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일부러 이런 류들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겠지만 이 소설을 시작으로 도장을 깨듯이 SF소설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갈 생각이다.

이 작품이 아니면 언제 또 전인류의 생사와 미래를 고민해 볼 수 있을까? 

다음에는 그의 또다른 SF작 '클론 프로젝트'를 읽어보아야겠다. 공대생인 그가 아직 기자가 되기 전에 재야의 고수처럼 숨어서 PC에 적어내린 그 '흑역사'(작가가 고백하길)를 말이다. 덜 익은 문체와 더 놀라운 상상력에 놀라게 될까? 아님 그도 이런 쑥스러운 소설을 쓸 때가 있었구나,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될까. 예상 외로 이 때부터 떡잎이 남달랐군! 하면서 감탄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의 팬인 나로써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비록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으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중박은 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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