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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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화장실에서 똥처럼 태어나 보육원에서 아무렇게나 길러진 주인공, 세상의 풍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권투'라는 것을 시작한 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 이 소설은 이렇게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한 장치들로 성장소설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금 날카롭게 말하자면 김려령의 '완득이'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소설들을 적절히 배합 해 넣은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놓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 이미 본 듯한 상투적인 재료들로 쓴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떤 불량 청소년의 성장 소설이라는 보호구를 쓴 채 자신 앞에 맞닥뜨린 '사회'라는 상대방의 몸을 향해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리고 있는, 젊고 반항기 가득한 권투 선수를 연상케 한다. 관중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를 지르다가도 그 놀라운 쨉 실력에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내뱉게 하는 신인 권투 선수 말이다.



그 남성호르몬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날선 몸짓의 사내에게 내가 묘한 연민과 짠한 공감을 느꼈다면 우스울까. 그것은 그가 권투 가운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쓰고 떠난 텅 빈 링 위를 망연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 것은 그가 나고 자랐던 그 공중화장실과 보육원, 그리고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내가 살던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모슬하, 편부슬하,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키워지는 아이, 지극히 가난하여 자신이 가난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들, 어딘가 비틀어지고 뒤틀린 환경의 아이들이 우리 반 구성원의 대다수라는 사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여러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아이들이 대부분 다 그런 환경에서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p.28)



주인공의 묘사에 따르면 나는 두 번째, 세 번째의 아이들에 속했고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와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한 마디로 빨랐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가 오재호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러니까 주위를 둘러보며 이 불의한 상황에서 누군가 최소한의 정의를 외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그를 외면한 반 아이들 중 한 명이 나라는 점이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내뱉은 '정의? 대한민국에 여즉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의 답을 겨우 초딩 밖에 안되는 것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장태주가 오재호를 한 방에 쓰러뜨린) 이후 나는 '선도연합회'에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성실하고 비굴한 납세자로 성장한 것에 반해 주인공은 '권투'를 배워 '성장'하는 것을 택한다. 사람과의 경기였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늘 매몰차고 편파적이었던 사회와 가장 공평하게 싸워 이기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경기를 한 장 한 장 챙겨보면서 그가 KO로 승리할 때마다 통쾌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자괴감이 남아 있었다. 그건 내가 (비유하자면) 일진들이 나쁜 짓을 하는 동안 망을 봐주는 사람이면서도 한편으론 주인공이 날리는 쨉을 선망하는 이중인격자였기 때문이다. 보통 '소시민'이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 말이다. 



그래서 그가 스스로 그토록 경멸하던 '힘의 논리'와 '돈'에 편입되는 것을 보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시장에서 할아버지를 뒤를 졸래졸래 쫓아다니며 튀김을 주워 먹던 시절을 기억해 내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경기를 KO로 끝장내는 '챔프 미스터 티'는 영웅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끈적끈적한 것들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 달콤한 행복에서 오는 외로움과 공허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렇게 그가 그 소리들을 외면하면서 승리의 경기를 계속할 때, 그는 결정적 한 방을 맞고 쓰러진다. 그 것은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 일격의 카운터펀치는 '챔프 미스터 티'인 그를 맥 없이 바닥에 뻗어버리게 했다. 자신이 소년원을 막 출소한 문제아든, 잘 나가는 권투선수든 어떤 모습이어도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줄 받침대가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가 가장 경멸하던 '돈'에 눈 먼 사람들이 날림으로 공사해 버린 그 다리를 건너다가 말이다. 



현재의 이익에 몰두한 자들이 빚어낸 예정된 참사, 그로 인해 가족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을 잃고 만 주인공의 끝없는 추락을 보는 것은 그를 지지했던 팬인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당신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p.354)'



그가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그 한 마디가 소설을 덮고 나서도 내내 마음을 때렸다. 마치 영화 '해바라기'의 김래원처럼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하고 작가에게 따져 묻고도 싶었다. 허나 작가는 내 무언의 항의를 들어서 주인공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가 바라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듯한 암시만을 줬을 뿐이다.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제 두 발로 똑바로 서는 것을 연습했던 그 '낡은 체육관'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가 그 곳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건 은퇴자의 쓸쓸한 퇴장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움을 거듭하다가 에라이, 안되면 귀라도 물어뜯자! 하고 이빨을 드러내 본 적이 있는 사람의 뜨거운 뒷모습인 것이다. 그의 투지를 보면서 나는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 그건 (비유하자면) 일진들의 나쁜 짓을 알고도 모른 척 했던 나의 잘못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놈과 알면서도 들키지 않으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놈들을 제일 먼저 족쳐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지 않기 위해서 이제 내가 그 링 위에 올라가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의 경기가 시작이다.


질 것 같으면 에라이, 귀라도 물어 뜯지 뭐!


번외)  작가의 사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선이 굵은 얼굴, 다부진 어깨와 체격, 핏줄이 불룩 솟아 있는 단단한 손...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어디서 권투라도 배운 게 아닌 가 싶었다. 실제 권투를 배웠는 지는 몰라도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세상에 흠씬 두들겨 맞은 적도 있고, 보기 좋게 쨉을 날려본 적도 있는 '선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갑자기 어디서 뿅, 하고 튀어나온 게 아닌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멋진 작품으로 탄생시킬 줄 아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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