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당시,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모략한 그 수많은 댓글들과 자료들이 대부분 국정원의 여론 조작에 의해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던 당시의 나 역시 각종 커뮤니티 등지에서 그런 내용들을 자주 접하면서 팩트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마치 숟가락을 들어 떠먹여주는 수프와도 같았다. 그것이 진짜 브로콜리 수프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위해 재료의 출처를 일일이 찾아보는 것은 대부분의 평범한 네티즌들에게 아주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국정원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강명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서술하지 않는다. 대신 2세대 댓글부대를 창조하여 그들이 어떻게 여론을 조작하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삼궁, 찻탓캇, 01査10 세 명으로 구성된 조직의 이름은 '팀 - 알렙'.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신상을 저격하거나 회사의 PR을 맡아서 하는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그들이 남기는 댓글, 즉 의견들이 거대 비밀 세력 '합포회'의 눈에 띄어 함께 일하게 되면서 '팀 - 알렙'은 점차 한국이라는 나라를 키보드 하나로 좌지우지하는 '민심'으로 변모하게 된다.
민심(民心)은 곧 조직이다. 그리고 다수는 늘 힘이 세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시국이 어려울 때는 다들 촛불을 들고 나와 정치를 바로 세우는 등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개인이나 소수를 다수의 이름으로 파괴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곳은 그런 일이 자주, 쉽게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누구나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었고 마음을 조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약간 흥분한 글에는 '회원님, 이 글은 논지가 좀 안맞는 거 같네요. 이곳의 수준이 겨우 이런 것이었습니까.' 따위의 점잖은 말로 훈계를 두면 처음에는 '훈장질', '선비노릇'하지 말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다가도, 한 명, 두 명, 세 명(소설은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세 명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만 있으면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
이건 진짜다. 다시 말해 팩트. 그래, 요즘 네티즌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팩트'말이다. 나쁜 말로 하면 '선동' 장강명이 얼마나 사전조사를 많이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 잡듯이 털고 다녔는 지 이 소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소름이 돋는다. 이건 사람을 묶어 놓고 꽃 속에 숨어있던 벌레들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징그럽도록 사실적이다. 나도 이런 방법을 누군가 쓰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걸 감히 소설로 내놓을 생각을 하다니, 역시 장강명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신문 기사에 누군가 '선동'이라는 단어를 쓰기만 해도 우르르 몰려들어 '확실치도 않은데 선동하지 말라', '급식충들의 페이스북 정치' 등 점잖을 가장한 비난들이 솟구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산 노인이 주목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