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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나선 - 사람들은 실수보다 고립을 더 두려워한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 지음, 김경숙 옮김 / 사이 / 2016년 3월
평점 :
노르베르트 볼츠의 저서에서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소개하기에 옮겨본다.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 2011(2007), 『미디어란 무엇인가(Das ABC der Medien)』, 김태옥.이승협 역, 한울아카데미.
p.115
억압이라는 심리학적 개념과 유사하게 사회학에는 침묵의 소용돌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존재한다. 토크빌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이미 1835년에 알아냈다. 그 이후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은 이 개념을 커뮤니케이션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p.114
그 어느 누구도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정확하게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고 간파해냈던 사실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현재적이다. 근대 이전에 인간은 관습이라는 불문법, 신의 계율, 또는 적어도 국가의 법을 따랐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는 현대사회에 이르러 파괴되었고, 여론으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뛰어난 심미안이 보여주던 방향감각 또한 사라졌으며, 마찬가지로 대중민주주의에서 여론으로 대체되어버렸다.... "다수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입을 열지만, 다수가 단호하게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Tocqueville, 1976: 294)."
pp.115-117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은 일생일대의 저작을 통해 이 증후군은 다뤘다. 그렇지만 침묵의 소용돌이라는 정밀한 개념이 이 나라에서 아직도 미디어학의 기본 개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오히려 그의 이론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침묵의 소용돌이 이론은 그 자체가 침묵의 소용돌이의 희생양이다.
그녀가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졌던 사람은 익명으로 남아 있는 한, 즉 침묵하는 한에서는 체면을 구기지 않고도 견해를 바꿀 수 있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여론을 주시한다. 또한 고립의 두려움 없이 표출할 수 있는 견해가 바로 공론이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관찰하는지를 관찰하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그러던데'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기댈 수 있는 일종의 유사 통계학적 감각이 훈련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러던데'라는 것은 민주주의에서는 최소한 잘 정리된 소수의 견해를 말한다. 미디어 민주주의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다수의 단호함을 대변하는 언어를 통해 노예화되었다. 따라서 여론은 다수가 아니라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정통성이 표출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역설에 부딪히게 된다. 즉, 인간은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여론을 통해 더욱더 노예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아마도 마르틴 하이데거가 거장의 특별성과 세인의 익명성을 구별하는데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거장이란 당연히 견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니체 식의 위대한 인간이다. 세인은 이와 반대로 유사 통계학적인 감각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세인(!)들은 유사 통계학적 감각을 통해 관찰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기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