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안전가옥 오리지널 24
민지형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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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는 성북동 산자락에 근사하게 자리 잡은 초호화 타운하우스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를 찾는다는 문자를 본 순간, 석달 여 동안 일했던 요양 보호를 인사도 없이 관둔다. 사랑이 넘치는 온화한 할머니와 단둘이 보내는 평온하고 비슷한 생활이 금방 싫증났기에 충동을 참지 못하고 거처를 옮겨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이 집에 온지 5주가 지났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재미있는 일이라곤, 사장님의 은근한 추행과 사모님의 끝나지 않는 경계 뿐이다.

TV 에서는 기억을 스캔한 VR 기기를 통해 지금 막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기인 '헬로,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를 광고하고, 이를 함께 본 타운하우스의 사장님은 8990만원짜리 기기를 사들인다. 가상 세계에 몰두해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던 사장님은 하와이로 골프 여행을 떠나고, 재이는 재미 삼아 사장님의 은밀한 체험이 담긴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작동 시켜 그의 몇 가지 기억을 살펴본다. 한편,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온 사모님은 다음날 말끔히 씻은 뒤 사장님 방에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사장님이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되찾는 듯 했으나 사모님은 자고 있던 그를 칼로 난도질한다. 공포에 질린 재이는 챙겨둔 짐과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소설은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라는 기기를 소재로 전개된다.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기기는 아니지만 VR기기나 게임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멀지 않은 미래에는 비슷한 류의 기기들이 개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간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체험할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소환하게 될까?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에서는 사장님과 사모님이 같은 상황을 다르게 기억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것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여러 책과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기억은 자의적으로 무수히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언젠가 라이프 랜드스케이프 같은 기기가 개발된다면 함께했던 이들 모두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고 싶다. 몰입도 높은 소설을 만나 토요일 저녁을 흥미롭게 보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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