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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평점 :

조나탕 베르베르의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는 '또 다른 베르베르의 등장'이라는 띠지 속 글귀에 시선이 쏠렸던 책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2020년 이 책을 집필하며 데뷔했다고 한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1888년 10월 뉴욕,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 제니는 수요일 정기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마술을 선보이며 받은 푼돈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는 마술사이다. 어느날 그녀에게 R이라고 하는 낯선 남자가 찾아와 대규모 마술 공연에 함께 가주면 4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제니는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고 비법을 알아내는 테스트에 통과하고, R은 그제서야 자신이 사설탐정 회사의 탐정이며 진짜 이름은 로버트 핑거턴이라고 밝힌다. 그는 제니에게 거액의 보수를 제시하며 미제 사건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한다.
내가 말은 마치게 해줘야잖소. 당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곧 나올 거요. 자신이 한 짓을 누군가에게라도 기어이 말하고 싶어 하는 범죄자에게로 다시 돌아갑시다. 그자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악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 때문이라도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오. 그자에게 필요한 것, 그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전부요.
...
핑거턴이 개입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오. 우리는 범죄자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잠재적 친구의 원형을 확정한 뒤, 그러한 원형에 부합하는 위장 신분을 요원 한 명에게 부여한다오. 그다음, 왜부 개입자들, 당신이 원한다면 조연이라고 해두리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이 <우연적>우로 만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완벽하게 번부 맞추지. 일단 우정이 구축되면, 증거를 찾는 건 아이들 장난이 된다. 그리고 증거를 입수하면......우르르, 경찰이 급습하고 범죄자를 잡는다오.
P.56-57 중에서.
로버트 핑거턴은 40년 전에 자신들의 종파를 창시해 심령주의로 유명한 폭스 자매의 사기극을 만천하에 밝히고,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탐정 회사를 업계에 내세우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제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책을 받아든 날에는 소설의 양을 보고 '2주 동안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때문에 발단부에서는 쉽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읽는 속도가 나기까지는 한참 걸렸는데, 읽다보니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 걸 느꼈다. 주인공인 제니는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신념으로 여러 번의 위기를 겪지만 좌절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인물이다. 책 소개에서 곳곳에 실존하는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책을 통해서 알게된 정보들이 더 많은 듯 하다. 폭스 자매가 19세기 심령주의를 이끌었던 실존인물이라는 점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고, 핑거턴 탐정회사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보안업체라는 것도 새로 알게된 이야기다. 아무래도 세계사를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까지 긴 호흡의 장편을 읽어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막상 읽고 보니 제니가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