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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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신작이 8년 만에 나왔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저자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는데, 1960년 문화대혁명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적잖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가난에 허덕이다 못해 자신의 피를 팔다가 목숨을 잃는 인물의 모습은 눈 앞에 실제로 일어나는 듯 생생했었다. 그 작품만으로도 허구지만 허구가 아닌 듯 작품을 그려내는 위화 특유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원청>에서는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대격변기를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 사실, 중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1900년대 우리나라는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으로 어렵고 고된 시간을 보냈는데, 이웃나라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처음에는 600페이지나 되는 분량에 압도되는 듯했지만 책을 독서대에 올려놓고, 틈날 때마다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눈이 책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걸 느낀다.

 

주인공 린샹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만 다섯 살 때 갑자기 아버지를 잃는다. 린샹푸가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작은 탁자와 걸상을 베틀 앞으로 옮겨놓고 베를 짜면서 그를 가르쳤다. 열세 살부터 집사 텐다를 따라 다니며 논밭을 살폈고, 아버지의 뛰어난 목공 솜씨를 물려받아 도끼와 대패, 톱과 친했으며 이웃 마을 목수에게 기술을 배웠다.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채 마흔 살도 안된 나이의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졌고, 결국에 그는 홀로 남겨진다. 맞선을 보기도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해 혼인할 기회를 놓친 린샹푸가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젋은 남녀 한 쌍이 그의 집 앞에 찾아온다. 남색 장삼을 입은 남자는 아창, 자잘한 꽃무늬 칭파오를 입은 여자는 샤오메이로 이들은 남매였으며 원청이라는 아주 먼 남쪽 도시에서 경성의 이모부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부드럽고 생기 넘치던 샤오메이가 이튿날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고, 그녀의 오빠 아창은 이모부를 찾은 뒤 동생을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북쪽으로 떠난다.

 

갑자기 건강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난 샤오메이는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고, 린샹푸는 그녀가 있는 일상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날 밤, 린샹푸는 자신의 재산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2월의 마지막 밤 샤오메이는 금괴를 가지고 집을 나간 뒤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후 말수가 줄고 웃음을 잃은 린샹푸는 목공기술을 배우며 계속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데, 자신의 아이를 임신 한 채 돌아온 샤오메이와 재회한다. 딸이 태어난 행복도 잠시, 아이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몇 차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는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곤히 잠든 딸을 포대기로 싸고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뒤 날이 밝기 전에 문을 나선다.

 

린샹푸는 잠시 멈췄다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또 말도 없이 떠나면 내가 찾으러 갈 거예요. 아이를 안고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당신을 찾을 거예요."

p.81

 

린샹푸가 딸을 안고, 존재하지도 않는 도시 '원청'으로 샤오메이를 찾아나서면서 맞닥뜨리는 사건들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보는 내내 가혹하기만 하다. 회오리로 인한 재해, 북양군과 국민혁명군 간의 내전이나 돈을 노린 토비들의 잔인한 행각은 끔찍했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가 주는 시련 속에서 린샹푸의 삶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샤오메이의 이야기와 그녀에 대한 궁금증도 하나, 둘씩 풀리지만 책을 덮고서도 꽤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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