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인사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8
김서령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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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서령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 《연애의 결말》과 장편소설 《티타티타》,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 《에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 인문실용서 《우아한 맞춤법》을 출간했으며 다수의 단편집에 참여했다.

 

 

무더운 여름날을 연상시킬 만큼 울창하고, 푸른 나무.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과 흰 고양이 한마리. 표지 속 그림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고요하고, 그저 평화롭다. 그래서 따뜻한 로맨스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책장을 펼쳤던 것 같다.

 

<수정의 인사>는 스물아홉 살, 한주은행 연정시장지점의 한수정 대리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약사인 아버지와 약국에서 사무 일을 보는 엄마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 있는 장녀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다.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했던 그녀의 나날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연정시장 날개떡볶이집 사장 철규를 알면서부터다. 은행으로 매일같이 현금이 꽉 찬 가방을 들고 입금을 하러오는 그는, 수정에게 끝없이 수작을 건다. 수정은 철규의 마음을 딱 잘라 거절하고, 어느날 밤 자신을 쫓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맨발의 슬리퍼만 신은 철규에게 붙들린 수정은 그대로 죽임을 당한다.                         

 

언니를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복수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밤에 문득 정신을 차렸는데 내가 침대에 일어나 앉아 있더라? 내가 누웠는지 일어나 앉았는지도 구분이 안 가는 날이 많았어. 그런데, 내가 손바닥을 싹싹 비비면서 누군가한테 빌고 있더라고. 그 새끼를 죽여달라고. 제발 죽여 달라고. 그 새끼 엄마도 죽여달라고, 제발 죽여 달라고 빌고 있더라? 그 때 알았어. 아, 내가 지금 지옥을 살고 있구나. 나는 지옥에 떨어졌구나. 정말 무서웠어. 빠져나가고 싶었고, 그렇게 평생을 살지 못할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좀 포기한 것도 같아.

p.122-123 중에서.

 

 

뉴스에서 수정이와 비슷한 이유로 죽게된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겁나기도 하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소설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수정의 이야기를 다룬 신문 기사의 제목이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이 불러온 참극"이었는데, 처음 봤을 땐 제목이 어색하다는 것을 못 느꼈던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던 사람을 죽였는데... 그걸 어찌 순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순정'이란 단어가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겐 엄청난 모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서야 들었다. 작가는 죽은 수정의 목소리를 대신하는데, 인사할 틈도 없이 세상을 떠난 수정이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무심코 지나쳤던 피해자와 유족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이들을 돌아보게 한다. 사회적으로 보호받고, 배려받아야 하는 그들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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