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놀이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고시원비를 충당하며 근근히 버티는 주인공.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으로 매번 끼니를 때우면서 자신의 존재도 신선도와 활기를 잃어버린 듯하다.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제의받은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관둔 그녀는 일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시체 연기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 침참해가는데. 한편 편의점으로 찾아오던 고양이 깜순이는 사고를 당하고 졸지에 재수없는 고양이가 되는데...
나는 문과생이라 이 사회에서 곧바로 취업하지 못 하는 주인공의 현실을 직접 경험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대학을 집에서 다닐 수 없는 거리라 생활비 부담이 커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왔기에 소설 속 주인공의 현실이 적잖이 공감된다. (실제로, 시체연기까진 아니지만 방송국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갔던 대학인데, 문과생은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나는 진정 잉여 인간인걸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던 시절이었다. 주인공이 전공과는 무관한, 단지 살기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들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출 뿐이다. 사람 이야기인 인문학이 경시되고, 또 이를 공부하는 이들은 설 자리가 없고, 그 상태로 공동체에 섞이지 못한 채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간다. 우리 사회의 일부 모습이기도 한 작품 속 현실이 나의 청년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응원해본다.
#달팽이키우기
<유리젠가>는 시체놀이, 유리 젠가, 달팽이 키우기, 발효의 시간 등 다섯 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특히 공감되면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달팽이 키우기'였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5000명을 넘어서는 오늘이라서 더욱이 그랬던 것 같다. '달팽이 키우기'는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직장을 잃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직장을 잃기 이전만 해도 모든 것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절이었는데, 생활비와 월세 그리고 매달 들어가는 적금 앞에서 더는 웃을 수가 없다.
주인공은 시골에 있는 엄마에게 김치를 가지러갔다가 배춧 속에서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살아보겠노라고 버티고 버틴 달팽이가 대견해져서 서울로 데리고 돌아온다. 서울 집 문을 여니 변한 건 없고, 고단한 현실을 온몸을 다해서 피하려는 듯 한없이 모로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그저 실망스럽기만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생 달팽이를 키우는 일은 주인공에게 기쁨이 된다. 그녀는회의적이기만했던 현실을 마주하고, 그동안 놓고 살았던 펜을 잡는다. 그리고 그 또한 달팽이를 보며 변화를 겪는데...
코로나19가 앗아간 우리의 일상들.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도 많아졌고, 이러한 현실은 처참할 따름이다. '달팽이 키우기'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탕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게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런데 실제로 지인들이 겪은 일이기에 마음이 저릿하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냥 주저앉아있지만은 않다. 그래서 불행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조금 더 밝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