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새겨진 장면들
이음 지음 / SISO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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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잘하지는 못하지만, 귀 기울여 듣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무엇보다 어르신의 저 태연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삶에 명백한 근거는 없다는 것, 이렇게 될 줄 몰랐으나, 어떤 일은 결국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 다만, 어떤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인연이 닿는 순간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직선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곡선의 형태를 띠고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준비된 운명처럼 서로를 향하지 않고, 어쩌다 접어든 길목에서 마주치는 것, 그 짧은 만남이 곧 우연일 테고, 그 다음은 운명이 하는 일이겠다.

p.26 중에서

 

<내게 새겨진 장면들>은 저자가 여러 시간의 일을 여러 계절 동안 조금씩 적은 글이라고 한다. 만남, 죽음, 일, 사람. 결국 삶에 관한 이야기.

 

요즘들어 부쩍 에세이를 많이 읽는데...... 서둘러 읽는 것에 그칠 때가 많았는데, <내게 새겨진 장면들>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유가 생긴 탓인지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책 속의 공감가는 글귀에 시선이 한참을 머무른다. '그래, 그렇지.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러네.'라는 생각과 함께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인연을, 운명을, 삶을 글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어서.

 

 

결국, 먼 타지에서 내가 깨닫게 되는 건 삶은 수렴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한 번쯤 기지개를 켜듯 삶의 선택지를 늘려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보통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겪고 난 후, 도리어 삶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까닭에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향한다는건, 그 사실만으로도 삶의 가짓수를 넓히는 일이며, 어쩌면 이 인분의 삶을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지껏 인생이란 하나의 목적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여겨왔건만, 실은 임의의 장소로 끊임없이 불시착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p.35 중에서.

 

 

 

 

한 번쯤 제 삶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멀리, 익숙하지 않은 장소를 부러 찾아가보는 건 어떨지 권하는 저자의 글에서 문득 낯선 장소로 떠나고 싶어졌다. 내 삶의 지표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인생의 어디 즈음 와 있는걸까? 결혼, 육아, 일... 내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사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터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바쁘게 지내다가도 막연한 불안이 나를 건드릴 때면 한없이 바닥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는데, 이럴 때엔 낯선 타지에서 찬찬히 삶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꼭 내 마음같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사람 사는 건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그 사실은 꽤나 위로가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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