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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 - 장석남의 적막 예찬
장석남 지음 / 마음의숲 / 2021년 7월
평점 :

장석남 지음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서정파 시인. 1965년 인천 덕적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방송대,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랑하는 것은 모두 멀리 있다>는 장석남 시인의 산문집으로 그가 생각하는 인생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여름 저녁 마당에 자리를 편다. 새우젓에 호박국을 끓여놓고 잠시 밥상에 없는 식구들을 생각할 때 조용히 젖어드는 저녁별을 보게 될 것이다. 여름 한철 무성한 자연의 질서 속에도 이미 이별이 있고 울음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도 있다. 인간은 그것을 너무 일찌감치 깨닫는 짐승이라 서글픈 거다. 그래서 한 숟가락의 밥을 떠먹고 한 번 겸손해지고, 한 숟가락의 국을 떠먹고 또 한 번 겸손해지는 거다." p.17, '눈의 식량, 귀의 식량' 중에서
따갑게 내리쬐던 햇빛이 무색하리만큼 차분한 밤이다. 창 너머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잔잔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책을 읽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책은 저자가 일상적 소재로부터 깨닫게 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돌멩이를 좋아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물긷는 소리, 사랑하는 장소, 음악, 달, 사랑 등 생활 속에서 그저 지나쳐갈만한 대상으로부터 가지게 된 찰나의 생각들이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하는 감동이랄까?
"적적해지는 것은 내 오랜 취미다. 그 취미가 나를 이끌어 간다. 적적함이 직업이라도 좋겠다.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 적적함은 맑은 거울이자 명쾌한 저울이요, 사랑의 반석이다. 적적한 곳에 이르지 않는 이를 나는 사랑할 수 없고 적적함을 모르는 이를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없으리라. 나는 끊임없이 적적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 헤매는 신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견디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적적은 그래서 지극히 상류층의 취미임에 틀림없다. 나는 자꾸 상류층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p.36-27, '취미는 적적해지는 것' 중에서.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라는 구절이 머릿 속을 계속해서 맴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공감가서... 언젠가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차마 글로 옮겨내지 못하고, 생각에 그치기만 했는데, 그것들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음에 놀랍다. (작가의 필력이 조금 많이 부럽다)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살면서 적적함 한번 느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적적해지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지만 또 온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어렸을 땐 '적적한 것'이 싫어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그 시간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글에 자꾸만 내 생각이 더해지는 매력적인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