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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3월
평점 :

천종호
어릴 때부터 꿈이 판사였다. 극빈의 경험은 '세상은 기울어진 저울'이라는 진실에 일찌감치 눈뜨게 해 주었고, 기울어진 저울추를 조금이나마 평편하게 만들고자 법관의 길을 택했다. 2010년 2월 소년부 판사가 된 이후 열악한 비행소년들의 처지에 눈감을 수 없어 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책은 저자가 법정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고심해 온 법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 나누기 위해 쓰여졌다고 한다. 그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생계형 비행으로 법정에 선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데, 소년범죄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물건을 훔치는 '절도'라니...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물건을 훔치는 일이 생기더라도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가서 사과를 하고, 변상하는 정도로 끝날 일인데, 돌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은 경미한 비행으로도 법정에 선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법정에 선다는 것은 아주 무거운 죄를 저질렀을 경우라고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갈수록 비행의 강도가 강해지는 소년범죄가 이슈가 되는걸 보면서 법이 조금더 엄격해져야한다고만 여겼다. 우리 어른들이 그리고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기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또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사연을 읽고 있자니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비록 범죄는 잘못된 방법이나 이는 자기를 좀 봐달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시그널일 경우가 많았기때문이다.


예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때였다. 함께할 때면 매번 자거나 삐딱하게 굴었던 아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규칙을 어기는 바람에 교실에서 큰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혔다. 아이는 그대로 교실 밖을 뛰쳐나갔고, 속이 상했던 나는 다음날 아이를 다시 만났다. "왜 그렇게 화가 났냐"는 물음에 망설임없이 자기 감정을 늘어놓으며 죄송하단다. 그간 태도가 좋지 않았던 것에 관해서도 아르바이트를 새벽까지 하느라 졸려서 잤던거란다. 아르바이트는 옷도 사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데 부모님이 돈을 주지 않기에 할 수 밖에 없다고.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들여다봐주지도 않고 다그치기만한 것 같아서... 찬찬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식을 내어주곤 아이가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언제든 오라고 이야기하며 돌려보냈는데, 이후로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규칙은 스스로 지키려 애썼고, 배가 고프다며 불쑥 문을 열고와서는 간식을 먹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그 때 아이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고,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도 손을 잡아 주지 않아 일찌감치 길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이른 나이에 잔인한 현실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수많은 아이를 생각하면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지곤 합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을 모으기보다 나누고 갈라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문제아와 모범생, 위기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 등 참 많이도 나누고 벌려놓습니다. 어쩌면 이런 분별은 삶의 질곡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삶의 질곡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얇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알테니까요." p.55-56 중에서.
보호받으며 그 속에서 사랑받고 자라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마음 누일 곳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 저자는 단 한번의 실수지만 사회적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더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꾸짖음보다 적절한 교육을 통해 비행의 문제점을 알려 주고, 아이가 반성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공감과 지지를 보내주면 실수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을거란 말에는 크게 공감했다. 분명 이런 관심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함께 배려하고, 노력해야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