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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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착과를 졸업했다. <엄마를 부탁해>가 한국 문학 최초로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그의 여덟번째 장편소설로, 삶과 세상에 대한 무르익은 통찰과 철학, 여러겹의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을 향한 연민에서 비롯된 깊은 사유를 시리고도 찬란하게 펼쳐놓는다.

 

20대였던 어느날, 빨간색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책을 펼쳐들었는데 다 읽고는 꺼이꺼이 울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으로 신경숙 작가를 처음 만났다. 바쁜 일상에 쫓겨서 작품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 때 즈음이면 또 우연찮게 만나길 반복하는 도중에 그녀의 여덟번째 장편소설 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설렌다고 생각한 건 기분 탓일까. 이번엔 아버지의 한 생을 우뚝 그려낸 소설이란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여동생을 따라나서자 J시의 오래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된다.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 전해듣고, 주인공 '나'는 오년이 넘도록 가지 않고 있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한다. 바싹 야윈 볼에 눈물이 번진 채 서 있는 아버지와 마주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지난 삶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을 겪고, 4.19혁명을 목도했으며 80년대 소 값 폭락으로 소몰이 시위에 참여한다. 그야말로 70여년간의 한국근현대를 살아낸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한편, '나'는 몇년 전 사고로 딸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고, 이로인해 그동안은 듣고도 무심했던 아버지의 고통과 아픔을 바로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단 한번도 아버지를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개별적인 인간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데...
 

"버스에 오른 후에 고개를 빼고 아버지 가게 쪽을 쳐다보았다. 버스창을 열려고 해봤으나 열리지 않았다. 나는 창에 손바닥을 대고 어둠 속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가게에서 막 뛰쳐나와 한쪽 발엔 슬리퍼를 한쪽 발엔 고무신을 끼어 신고 손을 흔들지도 어쩌지도 못한 채 나를 태운 버스를 쳐다보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에게 다시 작별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버스는 출발해버렸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버스가 출발한 후 아버지는 그 자리에 얼마나 더 서 있었을지를. 나를 태운 버스가 사라진 후의 어두운 신작로를 아버지는 무슨 마음으로 내다보았을지를. 아버지가 얼마 후에나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지를. 도시 생활을 하는 내내, 나와 그렇게 헤어지고 아버지가 그 허름한 가게에서 울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 괜히 손이 이마로 향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며 웬만한 일에는 기다림과 인내심이 발동하곤 했다." P.17중에서.

 

'아.버.지'라는 석글자는 내겐 그립다 못해 아리고, 시린 단어이다. 세상에 닳고, 닳아 당신 속은 무너져내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그렇게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살다가 가셨기에.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른다.

 

소설 속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롯이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아버지. 책은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는 나의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읽을수록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는 듯 했다. 작중 주인공과 겹치는 에피소드는 또 어찌나 많은지. 대학 때 집을 떠나 도시 생활을 했던 나를 터미널로 매번 마중 나오고 배웅했던 아버지. 그것도 오토바이로.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엔 자동차를 이용하셨다) 그리고 키워보겠다고 덜렁 데리고 온 흰색 말티즈를 혼자 감당하지 못해 결국 아버지 품에 살포시 안겨준 못난 딸이었지만, 그저 딸이 안겨준 생명체를 함께 끌어안아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품 속 아버지의 삶은 한국근현대사 속 고달팠던 우리 민족의 삶도 고스란히 담고있다. 격변의 시기를 살아내야했기에 참 힘들었던 세대였다. 그럼에도 버텨준 그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떠올리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나도 아버지처럼, 헌신적인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두 아이와 함께하면서 그렇지 않은 내 모습에 자책할 때가 많은데...아버지를 떠올리면 좋았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그래서 그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적어도 내 아이들이 세상에 남겨졌을 때, 아이들도 나를 그렇게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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