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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
김준녕 지음 / Storehouse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저자 김준녕
199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며 소설 <주인 없는 방><번복>을 썼다. 매일 하루의 절반은 소설을 준비하고, 나머지 절반은 소설을 쓰며 보낸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당신과 함께 가벼운 문학을 소망한다.
<낀>은 냉탕에 백룡, 낀, 벽에기는 낙지, 아랫세상에는 비버가,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등 총 5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당시 나는 농협이나 동네 시장을 돌며 금금치의 시세를 파악하고 있다. 그때 금금치의 가격은 '한 단에 8000원'이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벼룩처럼 그 주변에서 뜀뛰기 했다. 왜 이리 비싸요? 그리 묻자, 시장에서 50년이나 금금치를 팔아왔다던 박칠순 할머니가 말했다. 추버서 그라제, 추워서요? 응, 긍제, 추버서. 녀석, 온도에 민감한 게 어느 정도 나와 비슷했다. 시금치가 나와 가장 다른 점은 녀석은 자신의 그런 특성에 따라 몸값이 뛰었지만, 내 경우엔 몸값이 한없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둘 다 사회에서 소비되는 건 같은데, 왜 차이가 나는가 싶었다. " p. 41 중에서.
<낀>은 재혁이 어느 회사의 면접을 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는 교정기에 낀 시금치때문에 면접에서 탈락한 라콤에게 청량감을 느껴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되었나싶을만큼 이야기가 휙휙 넘어가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시금치에 집착하는 재혁을 발견한다. 그에게 시금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걸까? <낀>을 통해 당신,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알려줄 것이라는 책 소개의 말처럼 사회에서 내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민감한 건 비슷하지만 그럴수록 시금치는 몸값이 뛰는데 반해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 조금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재혁의 이야기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나아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또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냉탕에 백룡>이다. 유희왕카드 중 백룡을 무척이나 가치고 싶었던 주인공은 버둥거리며 카드를 집는다. 그는 집 나간 어머니와 아버지의 잦은 부재로 제대로 씻지 못해 늘 더러웠고, 친구들은 그가 만진 물건을 썩었다며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였다. 필사적으로 친구의 백룡카드를 만지다가 카드가 반으로 찢어지는 불상사를 겪지만 곧 절반이 잘린 백룡은 그의 것이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친구의 부모님은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서 백룡을 돌려달라 말하고, 분노한 선생님은 주인공의 뺨을 갈긴다. 그리고 카드값만큼 돈으로 보상해 주라고 했지만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주인공은 형에게 사실을 알린다. 그날 형은 친구 아버지의 배를 칼로 찔렀고, 그와 아버지는 쫓기듯 대구로 내려간다. 그들의 도피처는 대구바다. 그 곳에서의 삶 역시 여의치 않은데...
어린 마음에 가지고 싶었던 카드 한장은 주인공과 그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고작 카드 한장으로 인해 흔들려야하는,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그의 이야기 또한 우리 사회의 단면같아서 꽤 오래 여운이 남았다. 글을 읽는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또 그런대로 그것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