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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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유담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핀 캐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제38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쫓기듯 펼쳐든 <이완의 자세> 생각보다 글이 잘 읽혔고, 몰입도 금세 되었다.

아빠와 일찍 사별하고, 진지하게 만나던 사람에게 다단계 사기를 당한채 딸 유라와 빚만 덩그러니 남은 엄마 오혜자. 어떻게든 살아야했기에 그녀가 선택한 길은 선녀 목욕탕의 때밀이가 되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딸과 숙식을 해결하며 지내는데, 유라는 따뜻한 황토매트와 축축한 공기 사이쯤에 있는 그 공간이 싫다. 언뜻보면 계급장 때고, 알몸으로 평등하게 만나는 곳이 '여탕'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끈하고 고운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자들 혹은 자식의 성적과 명문대의 진학은 그들 사이에 위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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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은 계급장을 떼고 사람과 사람이 알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엄연히 서열과 위계가 존재했다. 여탕에서는 피부와 몸매 관리, 재테크, 자식 교육에 능한 여자들의 입김이 세고 서열이 높았다. 예쁘고 날씬한데다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자식 대학까지 잘 보낸 엄마를 사람들이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때밀이 아줌마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때밀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돈을 잘 벌고, 자식을 잘 키운 여자. 엄마의 모든 행위 앞에는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것은 아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때를 밀어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내게도 마찬가지로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불과하다'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를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때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p.106-1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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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탕'의 세계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의 몸을 보고 자란 유라에게, 몸은 그저 몸일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끊임없이 씻어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 유라에게 몸의 곡선과 움직임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야하는 무용은 갈수록 무거워져만 가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순간, 딱딱하게 경직되어 버리는 유라는 어린시절 자랐던 '여탕'이 어떤 의미이기에 그토록 딱딱하게 굳어버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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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수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한번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내어주지도 내려놓지도 못한다고, 나는 나 자신인 채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씩씩대는 만수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p.16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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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멸시와 무시 속에서도 '때밀이'라는 일을 꿋꿋하게 해나가는 엄마를 마음 아파하면서도 너는 밝은 무대에서 평생 춤만 추라는 엄마의 기대가 힘들기도 했던 유라가 마지막 장면에서 물 속에 몸을 띄운 채 스르르 눈을 감는 장면이 생생하다. 엄마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탕에서 스스로가 이완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에서 유라가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뒤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 궁금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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