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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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이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열 세살>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등이 있다.

동생이 깡마른 몰골로 집으로 돌아온 건

3년 전이었다. 세 살과 갓 백일 지난 아이를

품에 안은 채였다. 부서질 듯 마른 몸을 하고

나와서 속 시원히 자초지종을 밝히지 않아

속을 태우며 흔들어 대던 엄마는 그녀의

온몸에 맺힌 붉고, 푸른 멍들을 발견한다.

나는 잘 깎은 연필을 쥐고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가지에 대해서,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해서, 갓 시작한 봄의 서늘한

그늘에 대해서 쓰고 싶었으나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여섯 살, 네 살

조카 아이들 살피고 집안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은 부족했다.

"

며칠 째 읽고 있는 시집과 필사 노트,

흰 종이와 잘 깎은 연필 한 자루, 나는 차례대로

식탁에 가지런히 놓았다. 무엇이든 한 장을 채워야

잘 수 있다는 주문을 건 사람처럼 흰 종이를

노려봤지만 선뜻 연필을 쥘 수는 없었다.

영산홍이 붉은 물을 울리고 있다고,

등이 굽은 아버지는 떨어지는 벚꽃잎을 맞으며

일하러 갔다고, 달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밤에 식구들은 하염없이 잠이 들고,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식솔 하나를 떠올리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노란 민들레가 대견하게 꽃을 피우며 새벽을

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았다.

.

.

마음처럼 되지 않는 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의 전공이, 마흔 살이라는

중압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조카들에게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나의 현실이,

내가 자처한 족쇄에 엉켜 탈출할 수도

없는 이 집이, 나에게는 육즁한 관처럼

느껴졌다. 내 안의 언어를 꺼내지 못한 실패자가

된 나는 필사 노트를 펼쳐 시집의 한 페이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베껴 써 내려갔다.

p.42-43 중에서

"

 

사회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동생과 그리 하라고 등 떠밀었지만,

자신이 누리지 못한 걸 가진 동생을 보며

나는 상실감에 빠진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스스로에게 집중할 틈이 없어서 아무 것도

쓰지 못했던 나는 필사노트를 펼쳐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써내려간다.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고스란히 해봤는데,

하물며 자신의 아이도 아닌 동생의 아이들을...

그럼에도 가족들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지쳐

그런 수고스러움을 알아주진 않는다.

두 아이를 보살피면서 하고 싶은 일을

누르며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

패배자가 되어, 이대로 무용한 인간이 돼버리면

어떡하나 매일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했던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답답해져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편하다는 이유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주인공의 입장을

이해해본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만의 시를

쓰기로 하고, 더 늦기 전에 혼자 살아보고 싶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몰입하는 밤을

획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렇게 시인이고자 한다.

오롯이 그녀 자신만을 위한 밤이 얼마나

허락될지 알 순 없으나 그렇게 그녀는

종착지가 아닌 정류장에서 기다렸던 시간을

함께 태워서 떠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염원과 열망이 불확실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이 된다는 걸

이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한다.

주인공처럼 현실에 갇혀 시작하고 있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금은 더 나아가보며

어떨까. 우리가 서있는 곳이

인생의 종착지는 아니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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