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개는 그 말을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개들은 사람의 눈치를 잘 보게 태어나서 사람들의 감정 파악을 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치가 없어 서로를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라고 보리는 말한다. 개의 시선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를 해주지 못하고 자기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 이상했나 보다. 사람의 감정이 변하면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모두 바뀐다고 하는데, 개들처럼 민감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말 사람 사이에서 분란이 조금은 줄어들까? 소설 1,2장에서는 보리의 탄생과 보리가 태어난 '점점 없어지는 마을'에 대한 내용이다. 점점 마을은 더 수장되어 가고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났을 때, 주인집도 그 마을을 떠나게 되어, 보리는 작은 어촌마을로 가게 된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어촌 마을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보리. 보리 시선으로 본 작은 어촌마을의 일상은 정겹고 따뜻하다. 주인이 배를 타고 나갔다 고기를 잡아 들어올 때면, 보리는 배를 묶는 일을 돕는다. 또 보리는 주인집 딸 영희가 초등학교를 갈 때 따라가면서 아이들의 보디가드 역할도 한다. 고기를 잡고 돌아오면 어부 부인들이 모여서 어부 남편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모습이나 오랫동안 걸어서 학교에 가는 시골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 어촌 마을 사람들 묘사가 너무 좋았다. 이 소설은 개의 눈으로 본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인가, 다른 개들은 등장하지 않는데 딱 두 마리 '흰순이'라는 암컷과 '악돌이'라는 강한 수컷이 등장한다. 영희를 따라간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흰순이'와 흰순이를 찾아 나서면서 알게 된 '악돌이'. 약한 사람들, 없는 사람들에게만 더 짖는 악돌이는 사람들 사이에도 있는 고약한 존재로 뜻하는 것 같다. 흰순이는 처음에 보리의 첫사랑인가 싶었는데 후반부에 악돌이의 새끼를 낳으면서 보리에게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아저씨가 사고를 당하고 보리의 가족은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대형견인 보리를 데리고 갈 수 없었고, 당분간은 할머니 혼자 남아 저번에 심한 배추 수확 때까지 보리와 그곳에 남기로 한다. 그리고 소설은 배추를 팔고 나서 할머니가 배춧값으로 받은 돈을 세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사람들은 개를 쓰다듬어주고 먹을 것을 주지만, 버릴 때는 사정없다."
보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보리를 마을에 버렸을까? 아니면 개 장수에게 팔고 어촌마을을 떠났을까? 소설 후반부에, 앞에 등장했던 흰순이도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악돌이도 갑자기 없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개를 쓰다듬어주고 먹을 것을 주지만, 버릴 때는 사정없다."라는 문장이 가슴 아프다. 이 소설이 2005년에 써진 소설이니 15년 전에는 그랬고 지금은 안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요즘도 뉴스를 보면 유기견이 많아졌다는 기사가 종종 보여서 마음이 무겁다. 제발 보리가 어디선가 세 번째 가족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많다. 이 세상의 온 천지가 개들의 선생님이다"
애견인으로서 어느 때 개가 짖는다라는 것이나, 냄새로 모든 정보를 파악한다, 몸으로 배운다는 강아지 특성을 보리의 말로 설명해 주는 부분은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집 강아지도 저렇게 세상을 배워가겠구나 싶었다. 주인을 따라서 몰래 배에 올라타서 같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을 때 주인에게 혼날 줄 알았지만 아저씨가 가장 살가운 말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날 만선의 배로 뭍에 돌아오면서 "저놈이 같이 가서 많이 잡혔다"라고 했던 말이나, 주인아저씨 무덤을 앞발로 파다가 할머니에게 걸려서 할머니가 보리를 혼내다가 도망가는 보리를 보며 가만히 서있던 장면은 '개'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 존재인가 생각해 보게 했다. 댐 건설로 수장되어 가는 마을이 배경이고, 또 엄마 개가 맏형을 죽인다는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책은 전반적으로 크게 출렁이지 않고 담담하게, 때론 아름답게 이야기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