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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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 구 영화감독두 되구. 힘든 대루 손 벌리지 않고 네 힘으로 살구. 까짓 것 다 무시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난 그거, 멋지다고 본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커피 깡통에 비벼 끄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 다. 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숨기는 얼굴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연습이 잘 안 된 사람이어서 그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렁에 빠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 는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겠 지. 나는 할말이 없어서 팸플릿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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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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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냥 한두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끄러움을 죽여가며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엄마와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지켰다. 그리고 그 이유만으로 나는 엄마를 상당 부분 용서했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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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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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13쪽)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14쪽)

증조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잠시라도 뒤돌아보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십칠 년 동안 살던 집, 누린내가 가시지 않던 집, 똥지게꾼도 상대해주지 않아 스스로 오물을 퍼내야 했던 집, 해질녘 구석에 핀 꽃이 예뻐 바라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날아온 돌에 머리를 맞아야 했던, 무엇 하나 좋은 기억이 없던 집. 그 집을 떠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그 짧은 길이 천릿길 같았고, 걸음걸음이 무거워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것 같았다.
그래도 떠나야 했다. 그게 사는 길이었으니까.(34쪽)

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 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54쪽)

그녀는 아이가 작은 몸과 마음으로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는 게 아닐지 근심했다. 그녀의 사랑은 그 근심에서 자랐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마음으로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어미의 본능적 사랑 같은 것은 아닐지 몰라도.(73쪽)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81쪽)

삼천아, 새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야. 개성도 그렇니. 너랑 같이 꽃을 뽑아다가 꿀을 먹던 게 생각나. 그걸 따다가 전을 부쳐 먹던 것두, 같이 쑥을 캐다가 떡을 만들어 먹던 것도. 인제 나는 꽃을 봐도 풀을 봐도 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어. 별을 봐도 달을 봐도 그걸 올려다보던 삼천이 네 얼굴만 떠올라. 새비야, 참 희한하지 않아? 밤하늘을 보면서 그리 말하던 네가 떠올라. 이것도 희한하구 저것도 희한한 우리 삼천이가 생각나누나.(120~121쪽)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130쪽)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137쪽)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199쪽)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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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작은 땅의 야수들 1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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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간 그들의 발자국들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야수들은 결코 옥희를눈 내린 다음 날 아침이면 초가집 둘레를 포위하듯 어슬렁거리다 돌두렵게 한 적이 없었다. 정말로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행동으로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건 언제나 인간들이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죽음과 살해를 좋아하는 거야?" 옥희가 눈을가늘게 떴다. 계속 지속되어 온 육체와 정신의 피로로 그렇게 멍한상태만 아니었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을것이다.
"아, 그건 아니지. 난 그처럼 위대하고 아름다운 짐승이 철창 안에갇힌 채 독살당하는 걸 지켜보는 데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않아. 그건 뭔가..... 불공평해 보이잖아. 전혀 우아하지도 않고. 하지만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적어도 그 가죽이라도 내 몫으로 찾아오고 싶다는 거야. 동물원 측에서는 그 돈으로 나머지 동물들에게 줄먹이를 사겠다고 하더군."
자동차가 옥희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이토를 향한 오랜 증오심과동물원에 대해 그가 알려준 처참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옥희는 음식을 얻었으니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이토는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나한테 감사할 건 없고, 그냥 내가 했던 충고나 기억해. 난 이번 금요일에 떠나니까 아마 지금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거겠지…………. 빌어먹을 전쟁 따위도, 외로움 같은 것도, 다 엿이나 먹으라고 해. 계속 살아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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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 나의 갈팡질팡 지망생 시절 이야기
반지수 지음 / 송송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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