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미셸 플레식스 지음, 이세진 옮김, 케네스 그레이엄 원작 / 길벗어린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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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읽고 또 읽는 아동문학의 고전인 이유를 알겠다!

미셸 플레식스 각색, 그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길벗어린이)(그래픽 노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마음을 달랠 생각이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야생의 숲은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 바로 허세 가득, 사고뭉치 두꺼비 때문이다!


어느 봄날 두더지와 물쥐는 배를 타고 소풍을 나간다. 둘의 평화로운 시간을 얼마 가지 못한다. 돈 많고 허세 많은 두꺼비 때문이다. 두꺼비 때문에 동물 친구들은 악몽 같은 대소동을 겪게 된다. 두더지와 물쥐가 나오는 장면은 일상의 잔잔함,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보는 내내 배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잔잔한 호수 위에서 사방을 둘러싼 자연을 마음껏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두꺼비가 등장하고 나서는 정신이 없었다. 두꺼비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두꺼비가 진짜 종이를 뚫고 나와 내 앞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두꺼비의 정신 사나움과 허세에 이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많이 지친 느낌을 받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부분이기도 했다.


야생의 숲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두더지를 닮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두꺼비를 닮은 사람도 있었다. 야생이라는 나와 거리가 있는 거대한 또 다른 세상이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친구를 사귀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때로는 친구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냉정하게 대하는 등 인간 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두더지와 물쥐를 비롯하여 동물 친구들은 두꺼비 때문에 매일 시끄럽게 보낸다. 하루라도 사고를 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지 두꺼비는 제멋대로 군다. 두꺼비 캐릭터를 보면서 어른인데도 여전히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아니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구는 몇몇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두꺼비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달라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들도 내가 권한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며, 읽지도 않을 것이다. 읽더라도 두꺼비가 자기와 똑같은지도 모르고, 두꺼비를 보고 웃으며 욕할지도 모른다. 두꺼비가 무전취식을 하고 다른 이의 차를 훔쳐 모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재판을 받고 형량을 받는다. 두꺼비는 자신의 형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니까. 감옥에서도 허세는 멈추지 않고, 결국 탈옥까지 한다. 두꺼비가 저지르는 만행은 용서받기 어렵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본인이 다 차버렸으니까. 두꺼비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잘못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했다.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보고, 자신을 위해 친구들이 걱정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도.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언제까지 낭비하면서 살 건지 묻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멋대로 구는 두꺼비를 친구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자니 우정을 넘어 두꺼비를 향한 연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연민이 없다면 두꺼비는 오래전에 혼자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두꺼비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여전히 치르지 않았다. 그러니 잘못을 하루라도 빨리 알고-지금 알아도 너무 늦었지만-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 두꺼비는 많은 돈과 허세 대신 냉정하고 올바른 길을 알려준 존재가 필요하다. 어마어마한 인내심까지 겸비한 그런. 두더지와 물쥐, 그 외 친구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당연하게 여기진 않을까 걱정이다. 두꺼비가 진짜 삶을 삶답게 사는 그날은 야생의 숲이 평안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약할 수 없는 날이기도 하고.


그래픽 노블이 글씨로만 채워진 소설보다 읽기 힘들 줄 몰랐다. 그림이 스토리를 이해하고 기억에 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읽는데,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평소 그림이 아닌 글로만 된 책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래픽 노블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배웠다. 아동문학의 고전이나 다른 장르가 가능하다면 그래픽 노블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래픽 노블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동문학의 고전답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물쥐나 두더지, 오소리 등이 하는 대사가 내 마음에 꽂히기도 했지만, 두꺼비의 모습만으로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과정이 일어난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사만큼 상황이나 분위기, 극의 흐름을 통해 읽는 독자가 뭔가를 느끼고 깨닫게 하는 건 작가가 부릴 수 있는 마법이며, 동시에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다. 이 책을 통해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힘든 내가 은연중에 뭔가를 꼬집거나 상대에게 뼈 있는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야생의 숲의 하루하루, 계절의 흐름에 따른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풍자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강한 풍자의 성격이 그림과 에피소드와 잘 버무려져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로 새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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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 - 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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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분노의 늪에서 나를 건지는 법)(웅진지식하우스)


 

400쪽이 넘는 심리 관련 책을 읽고도 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자발적으로 구매해서 읽은 책이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였다. 심리 관련 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지만, 마음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에 균열이 생긴 것 같긴 하다. 이 책을 통해 답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는 완벽한 질문도 완벽한 답도 없는데, 그중 가장 답하기 어려운 마음이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했다. 어리석지만 용기 있고, 어리석기 때문에 가능했던 정면 부딪치기라고 생각한다. 답은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은 없었거나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알고 있는데도 모른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 건 나였다.‘


욕망과 분노, 미혹이 인간의 대표적인 번뇌 세 가지라고 했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당연히 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대상에 대한 마음이라고 했다(불도). 계속 곱씹게 되는 불도의 마음 정의였다. 대상에 대한 반응을 끊임없이 하는 마음이라서 하루라도 편한 적 없고, 피로하지 않은 적이 없다. 반응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부터 이미 반응하고 있는 마음을 보면 답답하고 뜨거운 불길 안에서 몸부림치는 고통을 경험한다. 이 고통에 들어간 것도, 벗어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어쩌다 번뇌라는 굴레에 발을 들여 벗어나지도 못하고 매일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벗어날 거라는 희망은 매일 갖는다. 희망이 잔인한 이유는 그럼에도라며 계속 꿈꾸기 때문이다. 솔직히 오늘이 이런데 내일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보다 나은 하루였다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번뇌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사는 일은 피곤하고, 불쾌하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머릿속에 갇힌 마음을 달래고 거칠게 몰아세우는 등 내 방식대로 제멋대로 구는 마음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 마음이 머릿속에 갇힌 이상, 내 마음인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었다. 내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배운 건 내가 지금, ’머릿속에 갇힌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충격적이고, 나를 향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렇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느끼는 게 맞다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며 외면했다. 사실을 마주보고 받아들이는 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는 일이 어렵지 않게 일어나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마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아는데 계속 도망치거나 숨었다. 도망과 숨바꼭질이 가슴 떨리는 일이면서도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도대체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일까.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받아들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겉보기에는 같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후자의 받아들임은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강요 당한 것 뿐이다.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아주 많지만, 대부분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다. 나는 나를 위하고 생각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거였다. 이 책에서 이해하기 쉽게 드는 예시를 보면서 속으로 많이 뜨끔했다. 특히, ‘마음 편집부’(1편집부~4편집부)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음의 편집 시스템은 일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마음 편집 과정에서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미 작업이 들어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맞는지도. 어쨌든 잘못된 것이라면 멈추고 바로 잡는 게 맞지만 변덕이는 마음 편집 시스템은 오랫동안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수학 공식처럼 외우며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여 풀듯 시스템 체계를 달달 외우고, 서툴게 작업 중지를 외칠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자각사실 감각이다. 우리는 감정 앞에서 이성을 쉽게 놓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본인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내가 동료의 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는 번뇌다. 분노 에너지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속으로 동료를 욕하거나 다른 동료와 험담을 나누게 되는 등 분노 에너지가 계속 부풀어 오르는 경험을 어렵지 않게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음 편집 시스템은 빠르게 일을 시작하고, 마음은 머릿속에 갇히면서 부정적 에너지로 상상 이야기를 빠르게 써내려간다. 우리는 이미 분노를 느낀 순간부터 많은 것을 잃고, 분노가 자신에게 독이 될 거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분노라는 감정에 충실하여 표현하기 바쁘다. 분노를 표출한다고 해서 분노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분노 에너지를 유발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멈춰야 한다. 그리고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트북 위에 놓인 손가락의 감각, 책상과 닿은 팔의 감각, 바닥에 닿아 있는 발의 감각 등등. 사실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노 에너지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편집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머릿속에 갇혀 있던 마음은 사실 감각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특히, 상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나 시간 등 여러 측면에서 봐도 자신에게 효과적이다.


며칠 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내가 불안하구나.‘라며 스스로 현재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고 나서 왜 불안한지 생각하고, 불안할 이유가 없다고 내가 정리하고 나니 바깥의 풍경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이렇게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무수히 많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간단해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간단해서 확실하게 도움이 되었다. 빨리 알아차리고 멈추고, 감각을 느끼는 것은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는다.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부처가 말했다>는 요즘 이리저리 미친 듯이 날뛰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내 마음이 지옥인 이유는 였다. 나 자신이라는 이유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이 책에서 얻은 것들을 일상에 녹여 보려고 노력하겠지만, 또다시 머릿속에 마음이 완전히 박혀 제멋대로 한 상상 속에서 지옥의 몸부림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그때, 부처의 말이 내 머릿속에 세게 꽂혔으면 좋겠다. 부처의 말이 나를 어리석고 불필요한 시공간에서 꺼내줄지도 모르니까. 부처의 말이, 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매일 선명하게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주석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지만 흐릿해질 걸 알고 있다. 흐릿해져도 좋다, 다만 내가 지옥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고 더 깊게 들어가려고 할 때만큼은 마음 편집 시스템의 열일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를 구해줬으면 한다.


이 책이 분노의 늪에서, 욕망의 늪에서, 미혹의 늪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이들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면 빠르게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며 마음이 평안에 이르는 날이 오기까지 부지런히 마음을 돌봐야겠다. 이 돌봄을 통해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고, 마음이 건강해서 타인까지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할 일이 많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번뇌의 늪에서 나를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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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지 않은 새
김강산 지음 / dodo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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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그림, 작가의 말까지 완벽한 그림책이었다.

: 김강산 글/그림, 날고 싶지 않은 새(도도그림책)


 

파랑새와 플라밍고의 사랑 이야기라, 낭만적이고 따뜻하다. 고정순 작가님의 <추천의 말>을 보고 나서 이 그림책을 읽기도 전에 빠졌다. 읽을 만하면 뭐 만족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정순 작가님의 추천이 아니라도 <날고 싶지 않은 새>가 내 마음에 깊게 자리 잡을 거라는 걸 파랑새가 뱉는 첫 문장에서 깨달았다. “날고 싶지 않아.”.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진 세상을 파랑새가 왜 날고 싶지 않은 것인지 궁금했다. 새라고 하면 날아야 하는데, 어째서 날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짧은 글을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이유는 책은 다 읽고도 알 수 없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작가님이 그랬다, 날고 싶지 않아 하는 파랑새에게 서사를 만들어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작가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파랑새에게 슬픔을 위한 서사는 필요 없었다. 다시 말해,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이유를 파랑새 본인만 알겠지만, 굳이 서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음을 느끼는 시기일 뿐이다.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다고 할 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요즘 모든 게 귀찮고 무기력한데 일은 해야 하니 기본적인 것만 하면서 겨우 일상을 끌고 가는 중이다. 내가 왜 그러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가 조용하고 연락이 뜸하면 엄마는 무서울 정도로 곧바로 알아차리고, 연락한다. 그리고 답해줄 수 없는, 어쩌면 답이 없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왜 그러냐, 무슨 일 있냐.”. 그냥 이런 시기구나, 라고 받아주지 않는다. 왜 그러는지 모르고, 무슨 일 없다는 답변은 오래전부터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엄마 연락을 피하거나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올려 잘 지내는 것처럼 연기를 하지만 의미 없다. 엄마는 완벽한 해결이 불가능한 내가 겪는 시기에 해결을 바라고, 계속 나를 들들 볶는다. 엄마가 그럴수록 나는 점점 문제가 되고, 수많은 서사를 가진 비극적인 인물이 된다. 엄마가 왜 그러는지는 알지만 엄마의 과한 관심과 내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를 문제로 바라볼 뿐,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매번 이런 식이라서 상처를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익숙함으로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위한다는 피만큼 진한 이유로 나에게 더 상처를 주고 있다. 엄마를 닮았다며, 당신은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안다고 이해한다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오래전부터 믿지 않았다. 10개월을 품어 나를 낳고 키웠지만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나를 다 안다고 말하는 엄마는 나를 제일 모른다. 엄마한테 어른스러워보이지만 사실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어른이 되고 나니 엄마가 어른인 척하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플라밍고를 구원자의 의미로 두려고 하지 않았다는 작가님 말과 달리, 개인적으로 플라밍고를 구원자로 느꼈다. 플라밍고의 사랑이 파랑새를 날도록 했으니 구원자가 아닌가. 날고 싶지 않은 파랑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 수 있도록 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구원이고, 구원이 사랑이다. 사랑을 말하는 표현은 많은데, 그중 구원이 가장 사랑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뭔가 거창해보이니 사랑을 자주 쓰는 것이다. 플라밍고는 파랑새의 날개짓에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받은 사랑은 반드시 또다른 사랑으로 세상 곳곳에 닿기 마련이니까.


플라밍고의 발에 묶인 쇠사슬이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자꾸 아프다. 파랑새를 처음 만났을 때 플라밍고의 슬픈 눈도. 플라밍고는 파랑새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했기에 파랑새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파랑새를 돌봤을 것이다. 변하는 계절을 함께 느끼며, 파랑새가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렸다. 왜 날고 싶지 않냐고 묻지 않고, 함께 있어주기만 했다. 내가 힘들 때, 엄마가 나한테 해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엄마의 방식도 분명 사랑인데, 플라밍고의 방식이 내겐 더 사랑처럼 다가왔다. 플라밍고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파랑새에게 주는 사랑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은 받지 못했지만 받고 싶은 사랑을 파랑새에게 준 것일까?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다. 플라밍고는 사랑을 알고, 자신이 아는 사랑을 아낌 없이 파랑새에게 줬으니까. 힘차게 날아간 파랑새는 분명 플라밍고에게 받은 사랑을 사랑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플라밍고가 그랬던 것처럼 아낌 없이 줄 것이다. 사랑은 기억되고 전해지는 거니까. 그리고, 또다시 날고 싶지 않은 때가 와도 플라밍고의 사랑으로 다시 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누군가를 살게 하고 돌보는 힘이 된다.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로 만든다. 사랑을 계속 키운다.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플라밍고와 파랑새의 사랑 이야기는 두고두고 세상 곳곳에 전해지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지 못한 만남에서 주고받는 사랑 이야기라니, 낭만적이다. 생각지 못한 만남이라고 했지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을 계속 곱씹는다. 그렇다. 우리는 개개인의 짊어진 슬픔에 놀라곤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이고. 플라밍고의 사랑만큼 <작가의 말> 또한 위로가 된다. 슬픔 자체만으로도 이해받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왜 슬픈지 묻지 말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존재를 만난다면 슬픔에 잠식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를 미워하고 공격하는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이 여전히 살만 곳이라는 말이 들릴 때면 비웃었다.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한 곳이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속내를 숨기고 연기하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세상 곳곳에서 상처를 입히고 입는 소리가 들리는 데 말이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시선을 끌기에 자극적이어서 그렇지, 곳곳에 사랑의 소리가 들린다. 상처와 사랑은 양극에 둘 필요도 없다. 사랑 안에서 상처가, 상처 안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것이니까. 사랑과 상처는 애초에 같은 단어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상처로 읽히고, 상처가 사랑으로 불리는 곳이 세상이니까. 확실한 건 세상에는 사랑을 나누려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가. 사랑을 아는 이들, 사랑을 나누려는 이들이 있는 한 세상은 여전히 살만 곳이며, 세상 곳곳에 숨어 들어 어지럽히는 어둠을 말끔히 몰아낼 것이다.

사랑을 알려준 플라밍고에게 고맙다. 그 사랑으로 저멀리 날아간 파랑새에게도 고맙다. 파랑새가 날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사랑으로 알려준 플라밍고는 진정한 사랑, ‘자신만의 사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상 곳곳에 있는 수많은 사랑이 온전히 사랑이 필요한 곳에 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수많은 플라밍고와 파랑새가 <날고 싶지 않은 새>를 만나서 사랑을 품기를 또한 바란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도그림책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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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 2 - 수상한 손님 초고리 창비아동문고 348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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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성장 그리고 자신.

: 채은하 장편동화, 오승민 그림 - 루호 2 : 수상한 손님 초고리


 

<루호 1>을 재밌게 읽었던 독자로서 <루호 2>의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호랑이의 기상을 이어받은 한국형 판타지 동화가 호랑이와 한국형 판타지를 좋아하는 많은 독자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나 또한 호랑이를 떠올리면, 한눈에 다 담지 못할 대자연을 바라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과 경이를 느낀다는 누군가가 한 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는 한다. 루호의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호랑이의 이미지를 더 다양하게 가질 수 있어서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루호 2>수상한 손님 초고리가 등장하면서 숨겨뒀지만 언젠가는 드러났을 사실을 마주하고, 친구 간의 우정과 갈등,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 단단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끊임없는 흐름으로 보여주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책장을 덮게 만드는 힘도 있다.


애초에 호랑이와 인간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보여주는 루호와 지아의 관계나 tv 프로그램 <동물농장>과 같은 동물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책과 프로그램 등을 보면 종을 뛰어넘는 관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낯설면서 익숙함을 느낀다. 여기서 익숙함은 개인적으로 안정감이다. 루호와 지아는 친구가 되었지만 진짜 친구는 아니다. 그건 서로를 믿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시선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시선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루호가 왜 저러지? 나한테 화난 게 있나?’로 시작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은 결국 갈등을 오래 끌며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지아는 호랑이 사냥꾼이자 자신의 아빠인 강태와 달리 루호와 달수, 희설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지켜주겠다고 하면서 아빠를 떠났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고드레 하숙에서 인간이 아닌 친구들과 지낸다. 하지만 지아는 본인이 선택했음에도 계속 질문이 따라왔고, 흑단의 말대로 지아는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는 걸 인정하는 건 지아 스스로 루호와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인정하는 게 힘들어서 더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루호와 지아의 갈등이 폭발했을 때 서로에게 솔직했고, 솔직한 만큼 상처를 줬다. 그 상처를 받는 건 서로이고, 그 상처를 마주 보고 견뎌야 하는 것은 각자이다. 지아는 후회했지만, 같은 선택을 망설이지 않았다. 어리석기도 하지만 지아는 그만큼 진심이니까. 흑단의 이간질과 아빠 강태의 변함없는 모습에도 지아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하며, 오히려 흑단에게 후회하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는 건 확신이라고 하며, 그건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며 한 방 먹인다. 지아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결국 지아를 괴롭힌 건 지아 자신인 것이다. 지아가 그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고, 루호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루호를 향해 가기까지 지아는 자신과 싸우고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을 맞서면서 단단해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지아는 망설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할 것이며,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같은 선택할 것이다. ’확신할 것이다.


지아만큼 루호도 단단해지기까지 힘든 시간을 잘 버텼다. 호랑이인 루호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없어서 루호가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달수나 희설, 지아, 구봉 삼촌에게 말해도 되지만. 루호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이나 초고리와 만나고,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 등을 하는 건 쉽지 않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창귀 초고리의 이야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 구봉 삼촌이 자신처럼 호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지아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대화해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대화해도 생기는 게 오해인데, 대화를 안 한다면 오해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모든 것을 불태울지도 모른다. 루호는 지아가 처음이다. 다투고, 화해하는 것. 뭐든 게 처음이라서 서툰 루호에게 지아와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웠을지 상상할 수 없다. 루호가 초고리를 만나고 초고리에게 어멍과 유자, 유복이네 이야기를 듣고, 산신을 사칭한 마천굴을 만나고 마천굴과의 싸움 끝에 초고리를 지켜내고 자신의 용감함은 물론 자신을 괴롭힌 건 자신의 시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긴 여정이었다. 루호가 혼자서 감당한 상황을 제3자 입장에서 보면서 몰입했다. 루호가 너무 외로웠다. 호랑이는 혼자 지내는 존재라지만, 루호는 더 이상 혼자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산신을 사칭한 마천굴이 루호에게 모악이 사람의 마음은 알려 주면서 그 마음 때문에 아프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안 해 주었다고,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운 자는 약해진다.’(170p)라고 말한 장면에서 루호가 마음을 갖게 되면서 아플 때가 있겠지만 아픔을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루호가 더 이상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 루호에게 어떤 일이지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흑단이 두고 간 시루와 쇠꼬챙이를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루호는 잘 이겨낼 것이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지켜낼 것이고, 루호의 마음을 받은 상대는 그동안 못 본 척했던 것을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것이다. 루호가 이뤄낸 일들은 루호의 용감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 용감함에는 루호의 곁을 언제나 지켜줄 구봉 삼촌과 달수와 희설, 지아, 마음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났을 초고리의 역할이 있었다.


무서울 게 없고 거침없이 누비고 다닐 호랑이도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랑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호랑이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건 마음이 있다는 것이기에, 마음이 있는 한 혼자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인데, 함께라면 서로의 지킴을 주고받는 것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조용한 날 없을 고드레 하숙, 다양한 소리와 냄새가 뒤섞여서 외로울 틈 없이 지나갈 하루하루들. 가끔 다퉈서 서로 등을 지고 말을 섞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깐 서로에게 일이 생긴다면 망설임 없이 이미 발걸음을 그쪽으로 향하고 있을 이들. 함께라서, 루호 곁에 구봉 삼촌과 달수와 희설, 그리고 지아와 승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초고리 덕분에, 루호와 지아는 더 단단해졌고 단단해진 만큼 둘의 관계도 아래서부터 천천히 단단하게 다져왔다. 어떤 이간질이나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앞으로 자신의 세계를 더 단단하고 자신의 것으로 가득 채울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다음 이야기가 벌써 궁금하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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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 마음의 기초체력을 올리는 진짜 휴식의 기술
김은영 지음 / 심심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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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의 만남은 마음 놓고 쉼에 다가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 김은영,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심심/푸른숲)(마음 놓고 쉬는 사람들)

 

이 책을 읽게 된 건 나를 돌아보고, 나를 안아주기에 제법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 책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땐, ‘내가 이상하거나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였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위로가 될 줄 몰랐는데, 위로 받은지도 모르게 위로 받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말하는데 한계가 있고, 까다롭고 내 것인데도 어쩌지 못하는 이리저리 튕겨지는 탱탱볼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내 것인데도 내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하지 못하지만 내 마음이 느끼는 것들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챕터별로 나눠서 다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마음 상태는 우리가 풀어서 혹은 알아듣기 쉬운 용어로 쓴다는 것 뿐이지 전문 용어로 설명한다. 우리가 겪는 감정이나 상황 등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상황마다 대처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여러가지 도구를 제시하고, 나의 상황이나 마음 등 내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이유와 그후의 과정을 알려준다.


알고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우리에게 친절함과 정확성을 갖춘 문장으로 꺼지지 않는 등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위로 들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 가장 앞자리에서 걷고 있는 이 책의 저자를 알고 싶었다. 그의 학력, 경력과 같은 딱딱한 삶이 아니라 구겨지거나 찢긴 삶 말이다. 학력과 경력이 탄탄한 그의 책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바라는 건 진정성이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로 하지만, 삶과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것에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진정성이라는 것, 객관성과 정확성 그리고 전문성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나는 기어코 그 진정성을 찾았다. 딱딱한 삶을 사는 그로부터 간절하게 이 책을 펼친 누군가, 어쩌다 우연히 이 책을 펼친 누군가 등등 수많은 누군가들이 이 책의 저자도 나와 다르지 않는 감정을 느끼고, 고민하는구나.’를 느낀 것이다. 동질감. 동질감이라는 진정성을 발견하고 난 후, 이 책을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챕터마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지금도 미루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을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늘 뒤로 미루었다. 미룰수록 나중에 일이 더 커질 거라는 것도 알면서도 말이다. 마음을 돌보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해야 하며,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꼈다. 무엇보다 스스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나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도망이나 숨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삶에서 쉽게 굽히고 함부로 움츠러들었다. 약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겁고 쌓아두기만 하며, 나를 탓하고 거칠게 몰아세웠다. 타인에게 하듯 나에게 다정했다면, 몸과 마음의 배터리가 고장나는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고장나더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A/S가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잘하고 있었는데, 뭐가 두려워서 스스로 조급해서 채찍질하며 깎아내리기만 했을까? 이 책은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 보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충분히 잘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고, 나를 사려 깊게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특별하고 중요한 일인지 말한다. 나라고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내게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나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질문들에 답하면서 나인데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나를 유리구슬 다루듯 조심스럽고 소중히 다뤄야겠구나.‘, 다짐하게 만든다. 나에게 이렇게까지 집중한 건 오랜만이다. 굳이 시간을 들여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뜻깊은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00쪽이 넘는 분량을 읽는데 오래 걸렸다. 원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이 책을 받은지 6개월만에 다 읽었다. 읽는 동안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의심하는 마음,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삐죽이 마음을 만났다. 나는 의심과 경계심이 익숙하고 편한 사람인 만큼 매일 피곤하고 지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라는 평범하지만 뼈 있는 질문을 종종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질문은 도돌이표처럼 돌기만 할 뿐, 그럴싸한 답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그럴싸한 답이라도 찾고 싶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간절했지만, 내 간절함이 부족한 건지 마음 놓고 쉬는 것은 사치 혹은 일처럼 느껴졌다. 의도적으로라도 쉬려고 하면 이렇게까지 쉴 일인가. 빠듯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나름 쉬면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달려든다.


진정한 이라는 것에도 조건이 늘 따라붙는다. 돈이나 지위가 넉넉한 사람이야말로 쉴 자격이 있는 거라고, 쉬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가능한 거라고.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쉬는 것은 내가 쉬고자 하면 쉴 수 있고, 일단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쉼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쉬는 것을 그저 일 안 하고 하루종일 뒹굴뒹굴하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나를 사려 깊게 돌보는 것에서부터 쉼이 시작되고, 쉼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쉼을 가볍고 간단하게만 생각하고 진짜로 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진짜 쉼에 대해 무지하고, 틀리게 안 만큼 내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는 상당했다. 방전된 배터리로 살아야 하는 하루가 무겁고 빠르게 지치고, 귀찮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요즘 지친다는 말을 자주 입밖으로 꺼내는데, 지친다고 말하고 생각할 때마다 나의 약함을 무기력하게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를 언제나 문제 덩어리로만 보니, 내가 느끼고 하는 감정이나 생각이 나라는 문제로부터 가지치기를 해서 계속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차원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내 안에 긍정 자원이 많고, 발굴할 긍정 자원 또한 넘친다. 내가 당연히 하는 것들, 갖고 있는 것들이 긍정 자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긍정 자원으로 내적인 부분을 견고하게 다듬을 수 있다는 것도.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에 익숙한 나이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고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생존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 발견이 낯설지만, 형용할 수 없는 이 감정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의 질문에 나름 답을 찾았다. 세상에 완벽한 답은 없다(그러면 완벽한 질문도 없다). 내가 직접 부딪치면서 답을 찾는 것이다. 내가 찾은 답이 쌓이면서 완벽한 답에 가까운, ’나에게만큼은 완벽한 답을 결국 만날 것이다. 질문도 답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찾아낸 것들이 내 마음이 살아있음을 틈틈이 알려줄 것이다. 생각보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에서 받았습니다. 서평단 활동이 너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하며, 오랜만에 의미와 조금의 여유를 가진 시간을 선물해준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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