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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ㅣ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평점 :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작가정신 신간인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근대여성작가와 현대여성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당대의 여성 작가 그리고 2022년을 살아가는 여성 작가의 만남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터라 신선했고, 무엇보다 오늘날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근대소설을 읽어볼 수 있다니 기대되었다.
백신애 작가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에 태어났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항일 여성운동가이자 배우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하룻밤 만에 휘갈겨 쓴 단편소설로 신춘문예 사상 첫 여성 당선자가 된다. 수십 편의 글을 남기고 31살에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식민지 조선의 구속된 여성들의 삶을 여성의 언어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에는 그의 소설 「광인수기」, 「혼영에서」, 「아름다운 노을」 세 편이 수록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근대 소설은 교과서 말고 따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읽으니 옛것의 정취가 가득한 것이 판소리처럼 읽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혼명에서」가 인상깊었다. 사망 한 달 전에 쓰인 마지막 작품인데도 글 속에서 뜨거운 신념과 강렬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들은 한 편의 소설이기 이전에, 당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문학적 사료일 것이다.
『해가 지는 곳으로』로 알게 된 최진영 작가는 제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다. 이 책에는 표제작이 된 그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와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노을」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작가가 「아름다운 노을」을 읽고 감명받아 이름을 따왔기 때문이다. 그는 9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은 작금의 현실에 안타까워하고 동시에 분노한다.
두 작가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이 존재하는 만큼 문체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불합리한 현실에 용기를 내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으며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만큼은 너무도 닮아 있다. ‘소설, 잇다’ 첫 번째 책으로 백신애, 최진영 작가를 선택한 건 탁월한 결정인 것 같다. 근대문학, 여성소설, 사회비판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추천합니다 :)
p.s. 근대문학은 지금의 한글과는 꽤 달라서 쉬이 읽히지 않았을텐데 편집자분들이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소설, 잇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