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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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환자 발생 이래, 2020년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주의' 단계로 전파가 시작되었다. 일주일만에 급속하게 전파되자 2020년 1월 27일 지역사회 전파로 보고 '경계'로 단계를 높였다. 다음달 신천지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2020년2월23일에 전국적 확산인 '경계'단계에 이르며 2월29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언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3월 12일 세계적 대유행인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의 비상사태 해제발표 및 '심각'에서 '경계'단계로 하향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23년 6월 1일이었다.


한참 코로나 19의 확산세로 '사회적 거리두기' 라는 말이 생기고, '비대면' 이라는 말이 무성해졌던 2020년의 봄의 소리는, 손소독제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로 기억되는 해이다.


자가 '격리', 영업장 '폐쇄',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인원 '제한' 등 전부 '단절'과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말들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확산'을 막기위한 방법은 '끊어내기'뿐이었다. 그 수많은 끊어내기 속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벅뚜벅 걸어나와 지금에 이르렀다. 


" 횡단보도에서, 건물과 거리곳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때면

거기 있는 모두가 2020년을 겪고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오늘에, 내일과 모레에,

이 소설의 못다한 이야기처럼 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주』 작가의 말 中 


소설은 2020년을 배경으로 우리가 겪은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그때는 처음이였을, 그래서 너무 당황하고 두려웠던,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 '지나온 시간들'을 담아 두었다. 이 모든게 지나고 나니 엄청나다.

그리고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놀랍다.


01 "그럴 수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 '이나리'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 해 기정시의 새경프라자 304호에서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첫 상가 공방인 <나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방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친하게 지냈던 한 수강생이 코로나19의 67번 확진자가 되어 인근 시립병원으로 이송되고 만다.

정작 나리는 '잠복 결핵 보균자'라는 이유로 코로나19에 감염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로 정신이 없는 때에 생각지도 못한 결핵얘기를 듣게 된 나리는, 호흡이 불편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하고 나아가 공황장애 현상인 과호흡을 겪기도 한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된 나리는 그동안의 관계와 앞으로의 관계를 다시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다. 기정시에서 살아온 남편 '오종수'를 만났고, 기정시에서 학원차량기사를 하며 살아온 '수미'도 만나 비슷한 시기에 마흔의 고비를 넘겨왔다. 13살 나리의 딸 '오은채'와 14살 수미의 딸 '김서하' 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며, 무엇보다 결핵을 옮겼을거라 추정되는 '만조 아줌마'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재회한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이 바로 『마주』이다.


02 '치부가 다 까발려진 사람이 동네로 돌아왔을때, 우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보고를 하듯 매일 서로의 동선을 공유하던 안전 강박심이 안심되는 동시에 숨막혔던 시절'이었기에, 확진자를 향한 '분노'와 '적대', '경멸'과 '실소'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한 형태였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명명할 수 없는 울퉁불퉁한 감정들로 뒤섞여 우리의 관계망를 흔들었다.

때문에 완치된 뒤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방과후 교사, 학습지 방문교사, 학원기사 등 '집단'을 상대하는 직업은 더욱 그랬다. 수년을 같이 일해오며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과 더 이상 함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든 일자리를 잃는다는건 선택의 폭을 아주 많이 제한할 수 있었다. 이건 사회적인 부분이였다.

수미는 개인적으로도 자신에 딸에게 많은 제한을 두는 여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도 이제는 그녀에게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리가 우연한 계기로 수미와 서하의 관계를 알게되어 두 모녀를 '분리' 시키려 하자마자 수미가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단절'을 겪는다. 수미의 단절은 자신이 쌓아왔던 경력과 신뢰의 단절이자, 부모로서 자식과의 관계의 단절이었다.

나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수미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였다. 의욕도 기력도 없어 언젠가부터 접어두어 잊고 사는 '생기'라는 것을 살다보니 죽여버리고 말았지만 다시 살릴 엄두가 나지 않는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기분은 어때?'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 며 기진맥진한 채 아이에게 매달리며 '니가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의미니'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투사하며 숨통을 조이는 전형적인 부모였다. '아이의 부정적인 반응에 상심'하고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해 하였기에 온전하게 아이를 지지해 주지 않는 부모였다.

"제발 나를 안심시켜줘,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줘" 라는 자신의 확장으로 자식을 생각했었기에, 자녀 역시 "내가 나로 있으면 엄마가 힘들어할거예요"라고 말하는 그 세상을 나리는 알고 있었다. 나리는 딸의 세상을 최선을 다해 좁게 만들어 온 여자의 면상을 쳐다봤다.

이 세상엔 여러 종류의 문제가 있듯이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상황과 조건 속으로 다시 자신을 기어코 밀어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미는 '단절'로 회복되지 않은것 같은 딸과의 관계가 어긋나자 딸과의 관계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대신 둘째를 낳아 새 관계를 그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마주하기보다,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어쩌면 많을지도 모른다. 나리는 수미를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과밭으로 가자"

수미를 데리고 나리는 2020년 1단계의 가을을 마주하기로 했다. 


03 " 코로나가 언제 끝나는데? "

나리는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자주 있는 13살 사춘기의 딸을 데리고 있는 40대 중반의 '엌마'(딸은 엄마를 이렇게 저장하고 있었다)였고, 제 3자처럼 적당한 해결책만을 내놓으며 '무슨 말만 하면 내탓이냐'고 말하는 남편을 둔 '아내'였고, 9년만에 홈에서 상가로 옮겨 공방을 연 자랑스런 '양초공예협회의 지도사 자격증 소지자'이자, 공방에 확진자가 나오며 민폐를 끼쳐 조심스러우면서도 코로나의 여파로 임대료 및 생계가 걱정이 되는 '자영업자'였다. 쏟아지던 관심에 '결핵 보균자'라는 걸 알았고, 과호흡으로 인한 '공황'증세까지 얻었다.

" '공황 장애' 단절이 일어날 때 나타납니다. 내 안의 미해결된 감정과 단절될 때, 내가 나한테 벽을 쳐버릴때, 몸으로 그게 나타나는 거예요.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질환이죠. 당신은 그걸 찾아야 될 거예요."

사람은 큰 공포를 겪으면 모든 일상은 다시는 그런 상황을 겪지 않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게 되어 있다. 밝고 오지랖 넓던 성격은 움추러 들었고 모든 공공장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미용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엘레베이터나 계단 통로, 그리고 운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사가 조심스러워 매사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나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여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9년만에 연 10평남짓한 공간의 문을 매일 여는 것이 지금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예약이 없어도, 제작 주문이 없어도 꾸역꾸역 열었다. 두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소를 확보하는것, 그것이 가장 절박했다. 공방은 그렇게 이어나갔다.

가깝게 지냈던 '수미'와 딸 '서하'를 보며 자격 없는 엄마인 수미를 경멸했고 엄마의 굴레 속의 서하에 감정이입했다. 관계는 공방만큼 이어나가는게 힘겨웠다.

단절. 미해결. 자신과의 관계의 재정립.

그래서 가게되었다. 명절 귀향길에 싸운 부부처럼 고개를 돌리고 날이선 상태로라도 몰입할 다른 것을 찾아서, 순간적 해방감을 찾아서, 만조 아줌마에게.

"엄마는 잘 계시니?"

"코로나가 다 끝나면 오래요. 추석때도 오지 말라고 해서 못갔어요."

엄마보다도 먼저, 이 가을, 사과 수확 일을 도우러 수미와 사과 밭으로 간다.


04 " 그 많던 사과는 어디로 갔을까? "

나리는 어릴적 반 이상이 산비탈에 걸쳐져 있는 사과밭을 운영하느냐 바빴던 부모님 집에서 자랐다. 만조아줌마는 여안 일대에서 과수원일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도와주던 팀중에 하나였는데, 이웃해 산다는 심리적 가까움 때문인지 부모님은 만조아줌마에게 많은 의지를 하며 자주 맡겨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맡겨지다가 언젠가 부터 그만두어 떠나게 되어서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만조 아줌마가 사과를 발효하던 모습, 나누던 대화, 닭간을 챙기던 것, 예초기보다 민들레를 심자고 말하던 아줌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비탈사과민들레밭 의 가장 최근 사진을 보았을때, 삼십년전 만조 아줌마가 2020년 여름을 살면서 자신처럼 지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항상 나도 모르는 나를 알아봐줄 누군가를 계속 갈구하고, 친밀감에 목이 말라 있었던 나리였다. 어릴적엔 만조아줌마가 곁에 있었고, 자라서는 남편이 곁에 있어줬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누구를 남겨 두었던가. 딸인가. 친구인가. ...공방인가.

"지하에 뭐가 있어요?" "증류실이 있지, 숙성실도 있고"

"딴산은 어디에 있어요?" "충청남도 여안군에 있지"

"누가 사는데요?" "밭일을 제대로 하는 일꾼들(만조아줌마의 팀)이 살지"

"결핵은 누구한테 옮았어요?"

딴산은 결핵 환자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병원에서 병상부족을 이유로 강제 퇴원당한 결핵 환자들이 모였고, 조금씩 그와 비슷한 처지들의 수몰민들이 골짝으로 들어가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유추하거나 어떤 팔자였는지 묻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이유건 서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몸이 다할때까지 약초를 캐고, 가축도 기르고, 사과 농사도 지었다.

나리는 수미, 그리고 딴산 사람들과 밭일을 도우며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결국 여안 시장으로 가서 비즈를 꿰맨 마스크 크트랩을 만들고, 털 수세미를 만들고, 천연비누도 만들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몸 속에 잠복한 딴산발 결핵군의 원천지인 '그' 딴산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그때 만조 아줌마가..." 미루고 미루던 것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린 시적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아 더이상 만조 아줌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여름을 기억했다. 지난 날의 자신의 기억을, 엄마의 눈치를 보며 몰래 음식을 먹던 아이가 가여워 '숨 좀 쉬라며' 기꺼이 돌보아 주려 손을 먼저 내밀었던 만조아줌마의 상냥함을,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아줌마에게 얼마나 큰 곤경을 빠뜨리게 했는지를. 미루고 치워두고 덮어두었던 마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05 "너를 그렇게 둬서 미안해"

나리는 자신의 실수 뒤의 만조 아줌마의 시간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때문에 만조 아줌마의 숙성실의 항아리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만조 아줌마가 농사와 양조에 쏟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찾고 있는 날짜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면서 항아리 사이사이를 누비고 또 누빈다. 만조아줌마는 나리의 결혼식에 찾아와서 '적적할때 먹어라'면서 사과주를 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론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은채를 출산 소식을 듣고는 술을 담가 숙성 날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리는 12살 이후 삼십년간 마음 속 어딘가에 아줌마를 숨겨두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아니었다. 언제나 나리 편에서 나리를 마주하며 응원해주고 있던 것이다.

나리는 남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보며 자라던 억눌린 시절의 자신을 수미의 딸 서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이입했었다. 그시절 만조 아줌마가 예전에 자신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것 처럼, 지금의 서하에게도 그런 시간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경멸부터 분노까지 알수 없었던 감정에 휩쓸려 수미를 차단하고, 다시 푸르고, 휘젓던 수미와도 마주한다. 수미의 시선이 닿는곳에 같이 시선을 마주한다. 그렇기에 후에 수미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을때 어쩌면 살짝 웃었는지도 모른다.


06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바길 바랐다"

코로나 19가 확산된 봄이 지나, 재확산된 겨울이 되었다. 여전히 위험했고, 이전히 더 긴 시간을 집에 머물며 그간 쌓여왔떤 서로간의 문제들을 다시 겪게된다.

수미와 서하는 지난 십년간의 시간이 서로의 면전에서 차곡차곡 펼쳐지며 사실은 그동안에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전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말들은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팠다가 또 어떤 날은 화가 나면서 자책, 자기혐오의 연장선상에서 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은 결국 당사자들이 겪고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코로나처럼, 지난 봄처럼, 수십년전의 사과밭의 기억처럼 말이다.


사람은 초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굳기를 기다린다 해도 단단해 지지 않는다.

잊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니 생경히 살아있기도 하고,

지웠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면 지워지지 않았다.

태울지, 태우지 않을것인지를 골라 심지의 깊이를 선택하는 일을 초만이 가능했다.

우리는 그 심지가 자신을 이유 없이 답답하게 하고 얼마나 괴롭히게 할지 그러다 또 언젠가 어떠한 계기로 타오를지 언제 꺼질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알 지 못한채로 묻어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미는 언젠가 나리공방에서 만들어진 '두꺼비 소주잔'에 만든 캔들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수미와 나리는 11월에 수확해 긴 겨울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부사보다 수확 시기가 늦은 만생종 사과를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발견한다. 품종명은 '아삭'이, 생산자 라벨에는 박만조가 적혀 있었다.

무엇이든 온전히 감각해 본 순간을 거치고 나서야 용기 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뒤에 알게 된다.


건너왔으나 온전히 건너오지 못한 시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소외 시키는고 스스로 고립되는며 단절되는 것이 당연했던 '거리두기의 시대' 건너온 우리들에게 넌지시 그 마음을 보다듬어 주는 시간을 선사한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며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게 하게 하고,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냈을때 비로소 타인에게 가까이 마주하며 가닿을 수 있음을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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