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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 나아질 수 없는 관계를 정리하는 치유의 심리학
에이버리 닐 지음, 김소정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남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우려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다소 위험해 보이는 제목에 관한 오해를 먼저 풀고 가자면 이 책은 남자를 적으로 삼고 있지 않다. 제목 속 '남자'는 '학대 가해자'를 말한다. 책에서의 사례도, 내가 주변에서 본 경우도 모두 가해자는 남자였다. 그만큼 여자보다 남자가 위험한 가해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 또 하나, 남자가 학대를 당할 때 겪는 두려움은 여자가 자신을 비웃고 무시하는 선이지만 여자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에 노출되어 있다. 생존자는 본인의 목숨을 비롯해 가해자가 내 가족도 해칠 수 있단 두려움도 안고 지내야 한다. 사안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

"학대를 당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을 부당하게 취급하는 것, 함부로 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학대는 모두 비슷하다. 이 책에서는 언어, 감정, 심리, 성, 육체라는 다양한 단어 뒤에 '학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육체 학대가 언어 학대, 감정 학대, 심리 학대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책에 나온 사례들은 물론 내가 주변에서 본 경우도 모두 그렇다. 처음엔 거친 말, 욕설을 퍼붓다 어느 순간 그 선을 넘는다. 그리고 한번 선을 넘은 남자들은 죽는 날까지! 되돌아오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상대방 감정을 교묘하게 조정하고,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마음에 상처를 내고 미안한다 말하지만 학대를 반복한다. 또 피해자의 잘못으로 돌릴 뿐 자신의 잘못을 절대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좋아지겠지.."하는 잘못된 희망을 붙잡게 만든다. 실제로 내 친구도 수년 전 만나던 남자친구가 누가 봐도 확실한 학대를 여러 차례 일삼았는데 자신 탓이라며 이 년 넘게 관계를 끊지 못하고 몸도, 텅장도, 마음도 털린 일이 있어 책 속의 사례도 모두 남 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학대'라고 하면 자연스레 '물리적 폭력'이 떠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을 두렵게 하거나 위협하고 협박하고 마음대로 조종하고 모욕을 주고 비난하고 내 마음을 해치는 것도 '학대'이다. 이런 정서적 학대가 물리적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인 만큼 연인 혹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 사람의 '천성', '기질'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겠다. 이런 학대자와 함께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매일이 '살얼음판 걷기'이다. 가해자는 그가 자초한 일이니 그렇다 쳐도, 그는 당신을 '미치게' 만든다.
"학대자와 함께하는 삶은 사실 '미쳐가는 과정'이다.... 이런 학대 전략을 '가스등' 전략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1944년에 개봉한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한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고의로 환경을 조작한다. 가스등 학대는 일종의 심리 학대로 아주 교묘하고 은밀하게 주변 환경을 바꾸어 학대자 자신은 전혀 관여한 부분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피해자가 스스로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자신감을 잃게 하는 행위다."

"만약 이미 연인 혹은 배우자가 되었다면?"
답은 하나다. "관계를 끊어야 한다." 가급적 다신 마주칠 일이 없도록 모든 연결고리를 완전하게 끊어야 한다. 아이가 있어서 관계가 끝난 뒤에도 계속 그를 상대해야 한다고? 학대 피해자가 엄마인 경우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아이에 관한 조언도 담겨 있다.(끊는 건 첫 단추, 구체적 조언은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살아남는 일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책에 있는 글자 몇 개로 모든 게 해결될 순 없겠지만, 상황을, 나를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수습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 한 권으로 학대의 아픔이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00쪽 중 80페이지 정도가 "회복"해 가는 치유법을 다루고 있는데 아주 구체적이다.(처음 읽을 땐 '치료법을 이렇게 다 알려주면 의사는 뭐 먹고 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가 의지만 있다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난 이 책의 가치가 여기 모두 담겨 있다고 본다. 앞서 사례와 조언을 보며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도 괴로운 시간이겠지만 그 이후의 일들이 더 크고, 어렵고, 아프고, 슬프기에.. 책 읽을 경황이 없겠지만 그래도 학대 경험이 있는 생존자분들은 꼭 읽으시길, 더불어 행복하던 연애가 언제부턴가 괴롭고, 아슬아슬하다면, 그와 있었던 일을 곱씹을 때 기분이 좋지 않다면, 뭐라 딱히 설명할 순 없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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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머지않아 연애를 시작할 고딩 조카들'에게 이 책을 건네줄 것이다. 딸이 있었다면 "필독"을 권하고 다 읽을 때까지 쫓아다녔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