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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사진 많고 글이 적어서 쉽게 봤다.
'무탈한 하루'가 간절한 마음에 내용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읽고 싶었다. 제목에 낚여도 좋다 생각했다.
책을 받아들곤 개와 고양이와의 동거 이야기라... 역시 좋은 제목에 낚였구나 생각했다.

백 년 만년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백 년 만년 벚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봄은 무한해도 우리는 그렇지 않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나에게 남은 봄은 마흔 번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
벚꽃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웃던 오후,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걷던 벚꽃길,
바람이 불면 눈처럼 흩어지던 고운 꽃잎들, ...
당신에게 남은 봄과
내게 남은 봄의 교집합은 얼마만큼일까.
그 작은 교집합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등장하는 일은 몇 번쯤일까.
P.133
늘 내 곁에 있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평화, 평화의 시간은 참으로 연약하고 당연하지 않다.
내게 생명으로 이어진 끈이 많을수록 이에 비례해 고통의 수 또한 많아진다. 가지 많은 나무일수록 부러진 가지, 부러질 가지 그리고 상처도 많음을 알지만 알았다한들 마음을 나누지 않았을까.

"때때로 우리는 농담처럼
상근이가 죽으면 포크레인을
불러야 할 거라고.
묻을 자리를 파다가
우리도 죽을 거라며 웃곤 하지만
그런 순간의 농담에는
가슴 한 쪽을 누르는 공포감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절박함이 있다."
나는 애완견을 키워본 적 없고, 키울 계획도 없다. 동물을 '반려*' 삼을 정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건데) 동물의 목숨을 사람만큼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관을 짜는 유난(나도 그렇게 묻히기 싫어서 그런가?)은 별로였지만 어쨌든 이 책을 쓴 그들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상처받은 존재를 대함에 우리는 얼마나 쉬이 우를 범하는가. 잘해주면 금세 친해질 거라는 생각과 친해지면 금세 상처가 아물 거라는 착각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따뜻함, 친절함 그리고 다정함.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가능한 가득 채우고 싶은 단어지만 실천은 어렵다. 빨래하고 밥하는 기본적인 일상이 가능한 컨디션만 되어도 기분이 좋은걸로 봐서 정상이 아닌 건 분명하다. 다행히도 글에서 느껴지는 다정한 공기가 나의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따뜻함이 가득한 책 속에 담긴 깊은 글에 당분간은 젖어 지낼 듯 하다.
작은 도마 하나에 나이테가 물결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난히 간격이 촘촘한 자리가 있다.
성장을 멈추다시피 했던 그 해,
나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엇이 나무를 그토록 움츠러들게 했을까.
몸을, 혹은 마음을
그 뒤로 간격이 차분해지는 것을 보면
무언가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 나무는 그것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
누구에게도 까탈 부리지 않고
조용히,
험한 시간을 살아내는 방법을 찾아내고
평화로운 삶을 다시 시작했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