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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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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겐 타고난 천성이 있다. 남을 돌보고 보듬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편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이들은 싫든 좋든 결국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두 유형의 사람이 사이좋은 오누이라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학대당하는 아내로 이뤄진 부부라면 어떻겠는가.

《여름의 겨울》은 세상 가장 아름답지만 동시에 세상 가장 불행한 이들 넷의 이야기를 주인공(소녀)의 시선으로 담고있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화를 낼 것이고 어머니는 언제나 아메바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동생을 되찾을 것이다. 젖니를 활짝 드러내는 그 웃음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 적, 지우고 싶은 현실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어떻게든 털어버리는 이도 있지만 트라우마에 지배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이도 있다. 전자가 소녀라면 남동생 질은 후자에 속한다. 어떻게든 동생을 트라우마에서 건져내고자 애쓰는 소녀의 고군분투가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결국엔 항상, 분류될 수 없는 종이들이 있다는 것을, 연습문제도, 기하학도, 곱셈도 진정 분류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그 시간은 끝난다. 삶이란 믹서에 담겨 출렁이는 수프와 같아서, 그 한가운데에서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칼날에 찢기지 않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것이다."
어둠에 잠식된 동생 질은 자기 손으로 무기를 쥘 수 있게 된 후로,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아버진 끝내 딸을 사냥감으로 내어놓는다. 소녀가 가진 사랑과 선은 속은 단단했지만 얇은 껍질 때문에 작은 상처에도 과육을 토해냈다.
"어린이들, 알다시피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 너희도 알게 될 거야. 너희 하늘을 어두워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란다. 너희 기쁨을 빼앗아가고, 너희 어깨 위에 앉아 너희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하지. 그런 사람들을 멀리해. 폐차장 주인 역시 그 중 하나야."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겠지만, 가장 안전해야할 곳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선택지가 없는, 단 하나의 답만 있는 질문은 애초부터 이 답을 위해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선택이 있을까? 사슴과 하이에나가 평화롭게 사는 숲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사랑했던 시절의 따스한 추억과 뜨거운 그리움은 신비한 사랑의 힘으로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게 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