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세트 - 전2권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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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방영 중인 <알쓸신잡 3>를 보며 막연히 "아~ 그렇구나.", "좋다~~~~" 감탄하며 듣고만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넌 관심만 많고 뭐 하나 제대로 깊게 아는 게 없다~~~!그지?" 내 안에 사는 악마의 속삭임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는...

"책이라도 찾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ㅜ_ㅜ

그러던 차에 때맞춰 현대 지성에서 <리커버 기념 이벤트>를 한다기에 응모해봤는데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두 권이 내 품으로 쏘옥~ 들어온 기쁨도 잠시, 책을 보자마자 "헉! 큰일이다.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2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산 오십인의 영웅 인생사가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얼마나 진실일까?'하는 부분은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해제>에서 먼저 밝혀두고 있다. 여러 고증을 토대로 100%는 아닐 수 있지만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한다.

놀라운 반전을 하나 터놓자면, 이 책은 <해제>부분이 가장 안읽힌다. (ㅎㅎ;;) 두께는 어마어마한데 뒤 영웅의 이야기는 아주 쉽게 읽힌다. 집중해서 읽다 정신 차려보면 진도가 쭉쭉 나가 있다! 단편 드라마를 본 기분이 들 정도로 이야기가 재밌다. ★.★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고, 공통점이라곤 한 개도 없는 동떨어진 시대를 살며,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가 있는 내겐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시련과 고난 앞에선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당연한 소리지만) 적절하게 잘 추려낸 이야기가 교훈적이면서도 냉철하다. 영웅이라 모두 스펙터클한 나름의 서사를 품고 있지만 포장하거나 좋은 모습만 다루지 않는다.

 

흠을 또박또박 지적해둔 글을 보며 "우리나라 같았으면 역모다 뭐다 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래서 우리나라엔 이런 책이 없나!?)

 


나처럼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관심은 많지만 아는 게 없고 책으론 더더욱 처음 접하는 거라면, 서문과 목차를 보고 평소 들어본 낯익은 이름을 찾아 골라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나도 지금 골라 읽기 하고 있는데 이름이 비슷비슷해도 낯익은 이름과는 구분이 가 흐름이 끊기지 않아 읽기 좋기 때문이다. :)

일단 한번 읽어보시라 감히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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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해 - 김민기가 생각하는 오래 사랑하는 법
김민기 지음 / 팩토리나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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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의 저자가 난 여자인줄 알았다. 책을 받고서야 남자가 저자란 걸 알았고, 읽으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난 '남자들의 사랑은 과묵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건 여자'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다소 가볍게 본 이 말랑말랑한 책이 내 딱딱한 사고를 단박에 빡! 깨 주었다.

 



그럴싸한 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소소한 연애담인데.
무엇이 내 마음을 이렇게 바꾸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의 힘인가? ㅎㅎ

 

 


나도 이제 젊은 축에 낄 나이가 아닌건지 이들을 보고 있으면 질투보단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 마음 결혼하고 애낳고 늙어서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친정엄마같은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내게 아직도 사랑에 판타지가 조금은 남아 있나보다. 

 


동화 속 엔딩(결혼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을 막 시작한 이 부부에게
막연하지만
진심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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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이야기 -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피엘 드 생끄르 외 지음, 민희식 옮김 / 문학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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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속 여우는 늘 행동이 민첩하고,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이 빨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임기응변이 뛰어나다. 거기다 때론 영악하기도 하다. 우화니까 망정이지. 내 주변에 이런 짐승이 있었다면 나도 이야기 속 늑대, 까마귀, 사자, 개가 되어 여우를 잡으려 혈안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표지 속 늑대의 눈이 뻘건 걸까?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여우 이야기》는 여러 편의 우화가 여우의 생을 따라 이어진다. 만나는 동물 대부분이 여우에게 (속임수든 우롱이든 둘 다든) 당하기만 하니 사건 일지라고 해도 되겠다.


"이 녀석! 너는 나를 생선 장수에게 매 맞게 하고 교회당에 가두고 또 어제는 그 농가의 주인이 나를 죽이게 하려고 했고 지금은 개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거짓말로 나를 골탕 먹였지!"(p.82)


여우에게 먹을 걸 빼앗긴 정도론 어디 가서 억울하다 명함도 못 내민다. 짐승은 짐승인지 목숨을 빼앗는 일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모른다. 여우에게 자기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 말곤 귀한 게 없다.

되로 받고 말로 갚는 여우

 

 

조롱의 대상은 지위를 막론해 왕도 여우의 재간에 놀아난다. 힘이 세 든 덩치가 더 크든 하늘을 날든 여우에겐 모두가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다. 빈손으로 태어나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빼앗기만 하던 여우는 빈손으로 죽는다. ㅉㅉ.. 늑대에게 몸소 가르쳐준 "모든 것을 원하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9번 우화)는 교훈을 온 생으로 보여주고 만다. 인생무상, 인과응보, 사필귀정, 아이러니의 극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우는 끝내 사자왕에게 애도를 받아내고 임종을 맞는다. (죽으면서도 왕에게 거짓말을 하고 놀린다.) 당시 권력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화였단 걸 알았기 때문일까. 내내 얄미웠지만 끝내 자신이 원한 건 다 이뤄낸 여우가 존경스럽다.



+
9. 모든 것을 원하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늑대와 여우는 훔친 사제 옷을 사제에게 팔아 그 값으로 거위 한 마리를 받는다. 둘은 함께 나눠 먹기로 했지만 늑대가 꼼수를 부려 혼자 독차지한다. 이에 화가 난 여우는 가는 길에 꾀를 낸다. 지나가던 독수리에게 맛있는 거위가 있다며 늑대가 있는 곳을 일러주어 먹이를 빼앗게 만든다. 늑대는 여우가 일을 꾸민지 모르고 자신의 탐욕으로 벌을 받았다며 반성하고 여우에게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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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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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마. 짐승은 옷을 입혀도 짐승이야."


소설 속에서 주로
'474번', 종종 '새끼'로도 불렸던 그는 살인범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정치인을 포함해 열두 명을 한자리에서 깔끔하게 해치우고 자수한 그는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들어온다.

의아하게도 474번은 자신의 행위만 인정할 뿐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라 여기지 않으니 자연스레 반성이나 교화의 기미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결국 죽습니다. 몸의 한계를 다 사용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다른 이유로 죽게 되죠. 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불어난 강물에 휩쓸릴 수도 있고 폭설에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 자연의 순리에 따라 죽는다고 하는데 그건 생각처럼 평화롭지 않아요. 그러나 아무도 자연을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연에게는 살해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죠.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도대체 왜? 물을 순 있겠지만 답은 알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이유 같은 게 없거든요. 의도도, 목적도, 없죠. 그러니까 그는 누군가에게 자연 같은 존재입니다."


474번 담당 교도관인
'윤'은 그를 복역자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금방 드러낸다. 나였어도, 아니 누구였어도 '윤'이었다면 그랬으리라. '윤'은 '대중'을 의미한다. 평소엔 지적인 척하고 냄새를 맡아도 차분한 척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사건·사고에 본능적으로 코가 벌름거리는 걸 숨길 순 없다. 처음엔 욕을 퍼붓지만 이내 "왜 그랬을까?", "어떤 사람일까?"라며 정황이나 사정을 궁금해한다.

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앎으로 인해 마음이 더 괴로워지기도 하는데 우린 굳이 그 길을 간다. 윤은 474번의 과거를 알수록, 그를 알아갈수록 그에게 빨려 드는데 속수무책이다. 작가는 '교도소장'을 통해 감정이입에 제동을 걸지만 무력한 마음은 속도만 줄어들 뿐 멈추지 못한다.
 

'그를 이해한다면 나도 '악'이 되는 건가?'
'
그가 안쓰럽게 느껴진다면 난 '몰상식'한 것인가?'
'
피해자도 불쌍하고 가해자도 안쓰러운 게 말이 되는 건가?'



"일그러진 그림. 기괴하게 조립된 얼굴. 한쪽은 웃고 있고 한쪽은 울고 있습니다. 떠나가고 버려지고.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보고 싶고 죽이고 싶고. 두 가지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 가지 감정도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누나와 엄마. 오피스와 무미야. 한 사람이 두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나도 둘이고, 그도 둘이다. 474번은 살인마였지만 선이 있었고, 내 속에도 악이 있다. 그를 이해하려는 나는 선인가 악인가? 그 점이 가장 혼란스러웠다. 선의로 그를 이해하려는 것인지, 내 속의 악이 그를 반기는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 속의 악이라는 존재를 숨기고 선한 척 해야 할까? 

주인공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모두가 만족할만한 합의점 없는 종결이 ... 씁쓸하고 슬프다. 다 읽은 지금도 책을 만지는게 조심스럽다. 





 +
소설의 줄거리 노출을 최소화하려니 글이 어렵게 돼버렸습니다.
소설을 읽고 읽으시면 한결 가독이.. 해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수월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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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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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직까진 마흔이 인생의 '중간',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하프타임'(휴식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흔'에 관한 책이 아직까지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 기시미 이치로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은 《마흔에게》이다.

 

 

 

"마흔? 또 마흔이야?", "도대체 마흔이 뭐길래?", "마흔이 그렇게 대수야?" 생각하던 나인데 슬슬 마흔이 다가오니 뭔가 기운이 심상치 않다. ㅎㅎ


사정이 있다.
마흔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보니 계속 마흔을 생각하게 됐다. 일부러 마흔에 맞춘 건 절대 아니다. 카운트다운으로 가장 많이 세는 셋! 삼 년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마흔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 "그때의 난 (지금의) 나, 내 인생의 전반전을 어떻게 평가할까?", "후반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생겼다.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에 발목 잡혀 주저하는 내게 저자는 '앞날을 염려한다는 건 '지금, 여기'를 소홀히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그리스인 조르바의 것과 닮았다. 이래서 책을 끊을 수가 없다. 박복한 뇌를 타고난 탓에 지식이든 지혜든 계속 주입시켜주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 잊고 만다.

 

 

 

 

"중년이 되면 평가나 평판에 개의치 않고 순수하게 배우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커피를 배우며 내가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예전처럼 나를 채찍질하지도 안달복달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모르니까 배우지, 알면 배우나?"라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늘 했지만 이십 대엔 이 사고가 몸으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이 사고가 조금씩 몸에 배어들기 시작했다.

저자는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게 '잘하게 되는' 것의 첫걸음이라 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덧셈, 뺄셈 사고 때문이다.

'예전엔 이 정돈 거뜬했는데...'
'이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이 생각 속에 '뺄셈 사고'가 숨어 있다.


젊고 건강하고 체력도 좋던 '과거의 나'를 이상으로 삼고 여기서 하나씩 점수를 지워가는 감점법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이 듦'은 '퇴행'이 되고 만다. 반대로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배운 것을 더해간다면 득점만 얻게 된다.

어떤 이들은 생산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생산성은 ('업'을 위한 기준이지)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 아니다. 나의 가치를 잘못된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란 질문에 어르신들 대부분은 이렇게 답한다.
 "이만큼 고생했으면 됐지. 아휴~ 생각도 하기 싫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제 좀 한숨 돌릴만한데 다시 시작하라니 싫으시단다.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온 만큼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달리며 즐기고 싶으신 게다. 나도 그런 날이 내리막길을 즐길 수 있길, 그런 날도 오길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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