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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윤영수 지음 / 열림원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불타는 듯한 붉은 빛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책의 표지가 묘한 마법 같은 기운을 내비친다.
앨리스가 시계토끼를 따라 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면...
이 책을 읽는 나는...표지에 있는 붉디 붉은 단풍나무 아래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잡혔다...
그래...이 책은 환상소설이겠구나...
책장을 넘기니...친절하게도 단풍동 가계도가 있다...
등장하는 이들도 많고 혈족이여서 여기저기 얽힐 게 많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계도를 복사기에 복사한 후 읽기 시작했다...
그래야지 중간중간에 책을 읽다가 다시 앞장으로 수시로 넘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총 4부로 나눠져 있는 데, 차례의 글을 읽다보니...
"숨은골짜기의단풍나무한그루빗겨앉은바위틈맑은샘물한줄기찾으시거든"이다...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빗겨 앉은 바위틈 맑은 샘물 한 줄기 찾으시거든....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그 단풍나무가 말을 걸 것만 같아질 듯하다. 이렇게 큰 붉디붉은 단풍나무를 어디에서 찾을쏘냐?
책의 시작...'긴 여름, 수고 많으셨소. 당신도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2주 전에는 이 한줄은 긴 여름 수고한 당신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선물로 들려주겠소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맙소. 신의 목소리는 정말 바람소리를 닮았군요.'하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을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일컫는 세계...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이 곳에서도 있다.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둔 연토...연토와 검은 머리 짐승 준호의 인연과 둘러싼 이야기...
식물인 듯, 식물에서 또 다르게 식물과 동물의 중간쯤...그렇게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 이야기...땅밑 나라 '나무 인간'의 세상...
그곳에도 이 세상과 같이 계급이 있고, 세대 간 갈등도 있고, 모험이 있었다...
맑은이, 하얀이, 황인, 땅옷족....
그들이 말하는 '어른이'....어른이들의 세상은 지상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

76세의 준호가 가서 마시게 되는 그들의 샘물...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오르게 한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바로 태어나자 마자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큰 몸으로 그리고 가득찬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 그들은 점점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필요치 않는 지식은 버리면 되는 것이다.
완전체로 태어나서 점점 죽음으로 가는 길...사람과 반대이다...
그러기에 검은 머리 짐승 준호는 그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저주스러운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연토는 살아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과연 축복일까?'
그들의 세상에서 점점 작아지고 나이를 먹는 어른이는 자식이 돌봐준다. 그렇기 위해 그들은 자식을 캐러 간다...
자기와 피가 한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본인이 캐고 가장 먼저 눈을 마주치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다.

모래 시계...시계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시간에 갇히게 된다. 시계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면 우리를 다그칠 뿐 아닌가 하는 대목에서 격한 공감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세상,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인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떠한 삶이든 그것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사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너무 늦은 것은 없다라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대사처럼...
세상에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면, 그들은 그 순간을 즐길 권리가 있었다...라는 책 속 글 귀처럼...
나 역시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를 이 가을에 만나고 싶다...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