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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방정식의 비밀 - 완벽한 생각으로 가는 인문학적 공식
이동조 지음 / 나눔북스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창의방정식의 비밀 - 완벽한 생각으로 가는 인문학적 공식
창의방정식 그 자체가 참 창의적이다. 7080 주입식 교육 세대에게는 창의적으로 뭘 하라고 하면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창의적인 과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작가가 주장하는 창조 프로세스는 세상만물 세상만사가 모두 같은 창조 프로세스를 거쳐 나왔으며, 앞으로도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질문해 온, 앞으로 질문해 올 모든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창의방정식에 대한 답은 Xyⁿ=ab 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참 황당하기까지 한 주장이지만 인간을 배제한 자연과 세상의 창조과정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창조가 이루어지는 전체 절차를 포착한 다음 전체 절차를 압축하여 간단한 패턴을 만들고 창의하는 패턴에서 공통적으로 뽑아낸 원리를 간단한 수학공식처럼 정리한 인문학적 개념의 ‘창의방정식‘이 무수한 창조 작업에서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 다양한 분야에서 주변 일상의 사례들을 들어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현실은 아주 끈질기기는 하지만 그저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는 아인슈타인도 동일맥락의 말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창의성이란 바로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이나 환상을 버리고, 이미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창의로 가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아집, 드러나는 현상에만 사로잡힌 ‘나’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내 생각은 틀렸다’는, 진실로 거부하고 싶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출발해 진정한 창의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며, 창의방정식의 비밀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이 과연 통념적으로는 받아들일 수는 없다하더라도 보편타당한 공식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오히려 이 창의방정식이 도리어 창의성을 방해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 자체가 도그마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생각이 너무 굳어져서 인가 아니면 이미 기성세대에 편입되어 있어서 새로운 혁신적인 방정식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작가가 주장하는 'T'자형 인간을 지향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도 해본다.
작가가 말하는 ‘T'자형 인간은 자기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에도 두루두루 일가견이 있는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다양한 전문 영역들을 알면서 그 영역들의 지식과 정보를 전문성 있고 깊이 있게 아는 'T'자형 인간이 바로 21세기형 인재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창의성이란 ’깊이 있는 지식‘이나 ’폭넓은 지식‘과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환경에 실시간 대응하고 끊임없이 두근두근 반응하여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는 생각의 힘이다. T자형 인간처럼 지식과 정보에 고정돼 있다면 일단 창의의 실패다. 창조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어야 진짜다. 두근두근 반응이 포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반드시 한계에 직면한다. 이제 주목해야 하는 것은 T자형 인간이 아니라 그 어떤 새로운 인간형이다. 창의성의 시대에 창의성의 눈을 가진 인재라면 ’T'자보다는 오히려 ‘아’자형과 어울린다.
‘아’자형 인간의 모형은 ‘창의적인 무대 세팅’ 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며, 창조 프로세스를 반영하고 있다. 진정한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지식’이나 ‘폭넓은 지식’, ‘융합’같은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보이지 않는 무대를 읽고 세팅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창조는 반드시 무대라는 공간에 시간의 프로세스를 거쳐 완성된다. 새로운 창조는 무대세팅(O)→시대의 변화와 다양한 분야의 접목과 만남(l)→두근두근 반응하여 새롭게 조합된 지점(ㅏ)→콘셉트가 구체적인 형식을 갖춰(ㅡ)→창조(·)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완성된다. 이 창조 프로세스를 포착하고 통찰하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이러한 ‘아’자형 인간이 작가가 말하는 창의적인 인간형이다.
작가가 책에서 수없는 사례로 창의방정식 Xyⁿ=ab를 예시하여 설명하고 있으나 조직 안에서 팀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예시가 가장 가슴에 와 닿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의 무대 안에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모순, 대립되는 음과 양을 집어넣어 두근두근 조합시키는 능력이 창의성이다. 팀 창조의 프로세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순과 음양이 조화될 수 있게 만드는 비법은 그것을 모두 포함할 무대를 공유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팀 창조는 먼저 하나의 비전과 근원적인 가치(X) 속에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팀원들(yⁿ) 하나로 두근두근 세팅하는 일이다. 그 공유된 하나의 무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긴밀하게 연동시킨다. 이 연결을 통해 분명한 “왜?”를 공유한 이들은 어떤 명령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원하고 바라기 때문에 창조의 결말을 향해 움직인다.
“먼저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을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라.” 생텍쥐베리의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일’은 yⁿ이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이 X이다. X가 yⁿ을 우선한다. 진정한 리더는 먼저 비전이라는 무대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무대 X가 세팅되었다면 10만명, 100만명이라도 동시에 연동이 가능하다. yⁿ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무대에 연동된 이들은 능동적으로 동기부여 된 강한 개인들이다. 이들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주어 창조로 가는 임무를 분담시키고 전체 프로세스를 완성시켜 창조로 나아간다. 이것이 리더십의 핵심이다.
창의성의 무대 위에 팀을 조합시키는 것이다. 개인(y1) 보다는 팀(yⁿ)이 더 창의성에 부합하는 이유이다. 그러니 단기적으로 개인이 팀을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끝내 창의 방정식의 창조 프로세스를 따르는 팀이 개인을 이기도록 돼 있다. 언제든지 개인보다 팀이 창의적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뭔가 일이 안 되거나, 일이 꼬이거나 실패를 거듭한다면 개인을 벗어나 팀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 창의 방정식은 바로 그들의 생각방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관계를 배척하지 않고 하나의 무대 위에 공존시킬 수 있을 때, Xyⁿ=1의 원리에 의해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창의할 수 없다.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면 이미 죽은 것이다. 관심사가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음과 양, 모순과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이라도 어떤 무대 위에 올라서면 그들은 위대한 한 팀으로 뭉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무대를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비젼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 안에 서로 다른 능력의 사람들이 두근두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세팅해 낼 줄 아는 사람이 창의적인 리더가 된다.』
작가가 책 제목에서 말하는 완벽한 생각으로 가는 인문학적 공식이 자연과학에서처럼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 아주 긴 역사의 흐름을 두고, 그 추세를 분석하거나 한정적인 틀 안에서 유형을 도출해 낼 수 있겠지만 일정한 공식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창의의 유형이 수천만가지인데 이를 곱한 환경의 변수 또한 수천만가지이라고 할 수 있기에 아메바와 같은 존재가 수억년 동안 아메바로 정체되어 있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똑같은 아메바와 같은 존재가 수억년 동안 수천만가지의 생물로 진화하기도 하고, 우리 인간처럼 가장 창의적인 존재로서 자가 창조 변모할 수 있는 존재도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며, 향후의 인류는 또한 주어진 틀이나 공식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변수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진보하리라 본다.
작가의 독특한 추론과 합당한 예시가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