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수업
진노 마사후미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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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수업 (진노 마사후미 저, 김대환 역, 잇북 출판, 20171225)

이 책은 세계사에서 출중했던 25명 위인들의 성공 노하우를 15가지 테마별로 기술하여 놓았는데, ‘세계사에서 배워라’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세계사 수업>이라고 붙인 것 같다. 일본 입시학원의 유명 강사답게 저자는 쉽고도 핵심을 요약해 놓은 듯이 세계사에서 배울 수 있는 정수만 뽑아서 풀어 놓은 것 같다. 일본도 우리와 학교 풍토가 비슷한 지 암기 위주의 세계사 공부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작가의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실패를 성공을 위한 ‘제물’로 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굳이 자신이 직접 경험할 필요 따위는 없다. 선인들이 이미 무수한 실패를 해주었으니 그 실패를 배우고 체감한 뒤 자신의 인생과 비교하며 ‘의사 체험’함으로써 실제로 실패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물며 앞으로의 세상은 확실히 혼돈의 시대로 돌입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다소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혼돈의 시대는 다르다.”는 작가의 말도 십분 가슴에 와 닿는다.

책의 눈높이가 대입입시 학원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고나 할까! 너무나 흔하고 뻔 한 얘기들이지만 인생이 힘들고 고비마다 한 번씩 보면 그 느낌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 본다. 평범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새삼 또 느낀다.

참언(讒言)인지, 충언인지 감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흔히들 마하는데 그것은 ‘발언 자체’를 감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언영색에 현혹되어 진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심안을 키우면 비교적 간단하다. 즉 ‘참언(중상모략}’이라는 것은 반드시 무능한 자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므로 ‘발언자체’가 아니라 ‘발언자의 입장과 심리’를 읽을 수 있으면 이것을 감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소양왕 편, 162p)

모든 일이 삼라만상(森羅萬象), ‘앞’이 있고 ‘뒤’가 있고, 양자가 하나다. 예를 들어 이점과 결점이라는 언뜻 상반되는 특성도 표리일체다. 어느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점이라 해도 같은 것을 다른 시점에서 보면 결점이 되고, 그 반대 또한 그렇다.(12장 재능이 있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276p)

인간은 자기가 고생해서 손에 넣은 것을 고집스럽게 놓으려고 하지 않기 마련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뻔 하기 때문에 ‘노력을 그만큼 했는데도 이 정도의 보상밖에 없는 건가 - -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한층 더 손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손에 넣은 것은 아무리 놓지 않으려고 매달려봐도 초봄의 눈처럼 줄어들기는 해도 늘어나는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매달리다가는 반드시 주위의 협력자들이 하나둘 떠나가서 정신이 들었을 때는 홀로 남게 되고, 그런 희생까지 치르며 소중히 여기던 것조차 어느새 손 안에서 사라져버린다. 항우는 이 우를 범하여 신세를 망쳤다.

“주어라, 그러면 얻을 것이니.”

항우의 전철을 밟지 않는 해결책은 하나,

자신의 품에 넣어두어도 어차피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담아 줘버리는 것이다. 얻은 것은 100% 자기 힘으로만 손에 넣은 것이 아닐 것이다. 반드시 주변 사람의 조력, 원조, 지원이 있었기에 얻은 성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반드시 자신에게 몇 배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남에게 받은 것은 없어지는 일이 없다. 항우와 유방을 예로 들어 말하면 항우는 모든 전투에서 적을 섬멸했을 뿐만 아니라 빼앗은 영토를 공신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망설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항우를 따르던 자들도 하나둘 항우를 떠나 유방의 밑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유방은 가능한 한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도 가능한 한 적에게 항복을 권했다. 또 항복한 적에게는 소유한 영토를 인정해주었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얻은 영토를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그로 인해 전국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각지의 제후들이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으며 나눠준 재물이 몇 배 몇 십 개가 되어 유방에게 돌아왔다. 유방은 확실히 항우에 비해 재능은 뛰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우는 빼앗으면 빼앗을수록 잃었고, 유방은 주면 줄수록 모여서 결국 천하는 유방에게 굴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얻은 것은 준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는 자는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조직의 리더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부하를 믿고 쓰는 도량과 타인의 이익(이타)을 위해 최선을 다사는 것이 결국 자신의 이익(자리)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에 근거하여 아낌없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두 영웅의 인생에서 배울 수 있다.(20.유방, 299~301P)

어차피 우리가 아는 성공을 향한 노하우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를 적절하게 현실에 맞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기 때문에 이러한 책의 평범함을 탓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식의 축적(input)은 어디까지나 ‘출발선에 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실천(output)에 옮겨서 시행착오 속에서 말로 얻은 지식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하고, 피와 살로 삼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15장 활용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322p)

 

일본인 작가답게 세계사 위인 중에 일본인들을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냥 애교로 넘겨줄 수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도 그만한 인물은 많았다는 것을 자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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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기 -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나만갑 지음, 서동인 옮김 / 주류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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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年 남한산성 항전일기 (나만갑 저, 서동인 역, 주류성 출판, 20171215)

이 책은 병자년(1636년) 봄의 일부터 병자호란이 시작된 12월 이후 정축년 2월 병자호란이 끝난 뒤까지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나만갑의 [병자록]을 번역한 전쟁사이다. 전란 중 식량을 책임진 관량사로서 나만갑은 먼저 그 화란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들고, 다음에 눈으로 본 것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한다. 『병자록』은 현재 국내에 약 10여 가지의 필사본이 전해오고 있고, 역자는 5권으로 이루어진 『병정록』은 그 양이 방대하여 이번 번역 대상으로 삼을 수 없었고, 대신 또 다른 『병자록』이 한 권짜리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데, 병자호란과 관련된 내용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이 책은 이를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만갑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전쟁의 전후 일들과 참상을 그날그날 있었던 내용 그대로 평가나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고, 역자는 현대인의 어감에 맞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잘 번역하고 있다.

북한 핵을 둘러싼 현재의 복잡하고 어려운 주변 4강 외교관계를 생각하면 역자가 이 시점에서 왜 이 책을 출간했는지 바로 이해가 간다. 역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형감각과 온화하면서도 자존감을 지켜나가는 외교력과 자강 및 인내의 자세라고 한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해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고, 명분과 지나친 자존,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외교 감각, 실리 외교의 실종이 문제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원인은 명나라 및 청나라와의 등거리 외교를 추진하던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몰아냄으로써 명나라에 편향된 외교정책을 밀어붙인 데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누인 내부적인 문제에 더해서 중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그때그때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중심을 잡아나가지 못하면 자칫 파멸에 이를 수도 있으며,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따라 나라의 안위가 달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한 네 나라가 에워싸고 있다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 있는 우리가 중심을 잘 잡으면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며, 이해가 걸려 있는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그 이점을 잘 살리면 영토가 큰 나라 못지않은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역자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만약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여유 있는 ‘평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현재의 여건은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일 수 있으며, 그 속에 나라의 살림살이는 물론 국격과 나라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도약의 요소도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의 민초들은 성숙해 있으므로 낙후된 정치권을 선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만 이런 내부적 여건과 달리 나라 밖 외교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도나 의지와 무관하게 바깥 사정은 수시로 달라질 수 있고, 그런 상황에 능동적으로 시기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외교에 실패하면 나라는 자칫 멸망에 이를 수 있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다.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이 성숙된 정치 감각과 외교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정묘·병자의 양대 호란은 겪지 않았을 것이며 그 통에 애꿎은 조선의 수많은 민초들만 죽어나가거나 노예로 살아가야만 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처럼 현재의 정치·외교적 상황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그 때와 매한가지이고 이 땅의 위정자들이 우왕좌왕하는 꼴이 그 때와 너무나 흡사하여 한 숨만 나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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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유쾌한 소설쓰기 - 14주 만에 누구나 쓸 수 있는 유쾌한 소설쓰기
최복현.박상준.정혜정 외 지음 / 양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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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유쾌한 소설쓰기 (최복현 외 3인, 양문사, 20171120)

위대한 소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읽을 때조차도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력을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그런 책들의 작가를 흉내 낸다는 시도를 감히 해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본 일이었는데 이런 책이 있다는 점이 적잖이 놀랍고 반갑다. 학생 때 시시껄렁하게 시나 수필을 적을 때 힘겹고 자신의 능력부족을 절감했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더욱 그리하였던 것 같다. 향후에는 AI가 최고의 작가가 되어 우리가 상상해보지 못한 책을 우리들에게 선사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하는데 아직은 소설을 쓴다는 자체가 설렘보다는 두려움, 자기 치유보다는 자기 한계 노출, 즐기기 보다는 고통스러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작가에게 소설은 사실 너머의 진실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라고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으나 사회관습, 타인의 시선, 종교나 도덕 등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없었고,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말하고 싶으나 말할 수 없는 진실들, 달리 말하면 그러한 욕망들을 소설은 다룬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설쓰기는 골치 아픈 게 아니라 자기치유는 물론 즐겁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임을 발견하고, 소설쓰기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소설의 시작과 서술자, 인물 설정, 소설쓰기에 쉽게 접근하기, 배경의 이해와 실제, 주제잡기와 주제문 쓰기, 복선의 이해, 소설의 발단과 전개, 사건의 이해와 실제, 위기의 이해와 실제, 갈등의 심화, 소설의 5단계, 절정에서 결말로, 장면 전환하기, 소설의 마무리와 문장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설의 여러 가지 플롯 형태를 매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고, 예시 지문들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근대 단편소설부터 시작해서 대표성을 띠는 한국의 현대소설로 진행되어 매우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실제 이 과정에 참여한 행복쭌님은 소설 책 한권 쓰기 과정은 이제까지의 일상적인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었으며 내 삶의 근원과 희망을 찾아나서는 여정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소설 한 권 쓰기를 통한 새로운 시작으로 일상과 진부함에 머물러 있던 자신의 삶을 일깨워 자유와 열망이 담긴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꿈꾼다는 마무리가 부럽고 또한 자신에게는 이조차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두려움과 시도조차 엄두도 못내는 용기없음을 가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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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강적들 - 나도 너만큼 알아
톰 니콜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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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강적들 (Tom Nichols, 오르마, 20171031)

현대에 와서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범람, 학점과 학위를 남발하는 대학교육, 센세이셔널리즘에 젖은 저널리즘 등을 원인으로 사람들이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분석하고, 이러한 현상으로 민주주의 체제는 포퓰리즘이나 기술관료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고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을 다루고 있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처럼 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었던 적도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토록 전문가로부터의 배움에 저항했던 적도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 업적을 폄하하고 있음은 물론, 전문가들의 충고를 거부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기초적인 지식마저 부족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거주의라는 지식의 기본 규칙을 거부함은 물론, 논리적으로 주장을 전개하는 방법도 배우지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수세기에 걸쳐 쌓아 온 많은 지식들이 가뿐히 내동이쳐지고 있고, 새로운 지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규칙과 실천 방식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전문 지식의 죽음은 단순히 현재의 검증된 지식만을 거부하는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현대 문명의 초석을 이루고 있는 과학과 냉철한 합리성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거부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문가들의 충고를 거부하는 행위가 자율성을 주장하는 행위로 둔갑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정보들마저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또 세상에는 모호하거나 인식하기 어려운 주제란 건 없으며, 모든 주제에 어떤 의견이건 다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원칙과 객관적인 정보에 기초한 주장들을 더 이상 만나 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문 지식의 새로운 거부 현상에 사람들의 독선주의와 분노가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문가의 몰락을 가져온 주된 원인으로 첫째가 인터넷을 꼽고 있다. 인터넷은 일종의 방대한 지식 저장소라 할 수 있지만, 동시에 급속하게 퍼져나가는 잘못된 정보의 발원지이자 저력자이기도 하다. 포털 사이트 검색 몇 번 해 봤다고 본인이 전문가가 됐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글의 90%는 쓰레기“라는 스타전의 법칙처럼 인터넷에는 나쁜 정보와 설익은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우리는 ‘확증편향(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증거만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자연스런 경향을 말한다)’에 의해 우리가 믿기로 한 것을 확인해 주는 정보만을 찾기 쉽다. 민주주의의 평등 강조는 모든 의견을 동일하게 존중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나도 너만큼 똑똑해”라고 여기는 자기도취적 나르시시즘이 확산되면서 전문가들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의 자리를 어설픈 지식으로 무장한 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나 유명인들이 대체하고 있다.

둘째는 대학 교육에서 원인을 찾는다. 학생을 고객으로 보는 무늬만 종합대학에 늘어나 학위와 학점이 남발되고 있다. 아울러 만연한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은 학생들의 지적 나르시시즘을 부추긴다. 심지어 하버드 대학마저도 가장 많이 줬던 학점이 A였다. 이로 인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오만의 환상’을 사회에 나가서도 깨기 힘들어졌다. 너무 많아진 대학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학점과 학위를 남발하고 있고, 비판적인 지식인을 기르기보다 고객인 학생들의 근거 없는 자존심을 부추기는 데에 급급하고 있다.

세 번째 원인으로 新저널리즘인데 너무 많은 언론과 매체들이 시청자, 구독자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뉴스와 정보를 수많은 채널을 통해서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정치 토론, 건강 프로, 증권 프로 등에서 어설픈 전문가들이 가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쏟아 내며, 그러한 상황에 대중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팔릴 만한 뉴스, 즉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뉴스에 치중하고 있다. 케이블 방송들은 24시간 오락으로 바뀌어 가는 토론과 난잡한 정보 제공 프로들을 내보내면서 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전문가와 전문 직업인들의 노력을 방해하기 위해서 세 가지로 중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무엇도 오만함, 나르시시즘, 냉소주의의 해로운 융합을 극복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작가는 서구의 전통적 자유주의가 무지한 대중에 맞서 일어날 때라고 드러내 놓고 말한다. 엘리트주의라는 무서운 비난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하고, 이 엘리트주의라는 딱지는 유럽을 비롯한 좀 더 계층화된 문화를 가진 지역보다, 평등주의가 더 강한 미국에 언제나 더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이다. 서구와 미국에서 지식과 과학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민주주의와 세속적 관용 덕분이었다. 그런 장점이 없었다면 지식과 진보는 이데올로기와 종교와 포퓰리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유혹에 자리를 내준 나라들은 어김없이 끔찍한 운명을 겪었다. 대대적인 탄압, 문화적, 정치적 빈곤, 그리고 전쟁에서의 패배를 포함해서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엘리트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엄청난 부의 불평등과 엘리트의 실패가 만연한 지금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게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 소중한 민주주의 체제를, 그것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과잉 현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엘리트들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정부 시스템을 뜻하는 말이지 실제 평등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한 사람의 투표는 다른 사람들의 투표와 동일한 효력을 갖지만, 모든 의견이 그렇지는 않다. 교육을 많이 받은 엘리트와 그들이 봉사해야 하는 사회 간의 생산적인 결합을 위해서, 새로운 기본 규칙을 다시 세워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전문가와 전문지식을 믿지 않게 된 것은 겨우 반세기 전이었다. 마침내 인종, 계급, 성이라는 낡은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 사이의 장벽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시민과 엘리트 전문가 사이의 장벽까지 무너지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지닌 지식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타인들의 전문가적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우리는 이런 뻔한 결론에 반감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라는 자부심에 손상을 입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 서구의 합리주의와 과학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작가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지만 전문가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처방에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엘리트주의가 엘리트 지상주의로 흘러 우생학에 입각한 불평등 구조의 심화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되며, 우매한 대중의 우민정치가 그래도 엘리트 지상주의에 의한 폭정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리스토렐레스나 공자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哲人政治는 달성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며칠 전 예방접종이나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자연 치유로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는‘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카페(회원 약6만명)의 운영자인 한의사를 지난 11월 1일 기소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현대에 극단적으로 흐르는 전문가 무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였다. 작가의 좀 더 실질적인 처방과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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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 슈퍼플랫폼을 선점하라
호모 디지쿠스.강정수 외 9인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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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아마존의 나비, 강정수 외 9인, 20171025)

IT 기술 중에서 특히 목소리로 검색하고, 목소리로 컴퓨터 및 사물을 제어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의 일상과 산업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를 논의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정수 겸임교수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아홉 명의 저자들이 지난 여섯 달 동안 공부하고 토론하여 나온 결과물을 엮은 산물이라고 하는데, 깊이 있는 현상 분석과 미래 예측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실감케 만들어 준다. ‘보이스 퍼스트(voice first)’ 패러다임이라는 책의 제목은 인간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식,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는 방식에서 사람이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도구 중 하나인 목소리로 기계와 대화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컴퓨터 또는 기계가 보이스 즉 음성이라는 새로운 감각기관을 새로 얻었다는 의미이다.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의 상대적인 의미인데 이는 컴퓨터가 작아지고 모바일 세상이 오자 사람들은 사무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언제 어디서건 이메일을 확인하고 쇼핑과 계좌 이체를 하며, 문서를 확인하고, 카페에서 자유로이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컴퓨터를 쓰기 위해 사무실에 갈’ 필요가 없어졌음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모바일 컴퓨팅이 사람들을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보이스 컴퓨팅은 우리를 화면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10년 전인 2007년 탄생한 애플의 아이폰이 터치 인터페이스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명령을 수행하여 사람들이 정보를 소비하는 공간과 습관을 일거에 뒤바꿔 놓으며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 시대를 열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 산업 지형과 기업 순위가 바뀌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흐른 지금, 폰을 손으로 집어들 필요조차 없이 말로써 요청하면 쇼핑은 물론 메신저 보내기, 가전제품 제어까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보이스 퍼스트 월드(Voice First World)’에서는 컴퓨팅의 새로운 모습으로 음성 명령, 사람의 움직임, 온도의 변화로 컴퓨팅이 활성화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심지어 인간의 생각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변 환경이 스스로 지성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하여 사람이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의 도래를 시사하는 것이며, 보다 진화한다면 특정 동작이나 얼굴 표정, 심장 박동 수, 심지어는 생각만으로도 시스템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생활 곳곳에 편재하는 인터페이스는 기술의 진보가 지향하는 궁극의 성배와도 같다. 이러한 앰비언트 컴퓨팅으로 가는 출구가 바로 보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인터페이스는 어떻게 타이핑에서 터치로, 보이스로 진화하게 되었는지, 목소리로 사물을 제어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며,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음성을 데이터화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얼마나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 자료들을 통해 분석하고 토론한다.

다만 이러한 기술의 변화가 현실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 어떤 지각 변동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조금 지면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되며, 기술이 곧 권력이고 자본인 시대가 도래할 것인데, 개인정보보호, 정보 집중으로 인한 소득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에 대한 대책이나 고민 등이 부족하고, 분석이 전문적이면서도 다소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 한 사람 위주의 논리와 생각이 많이 좌우되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마지막 에필로그(대담 : 다시 한 번, 혁명이 온다)에서 작가들의 진솔한 생각과 예측은 현장에서 토론하는 생동감을 느끼게 하여 좋았다. 한국 기업들의 보이스 플랫폼 기술 수준, 보이스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은 딥러닝과 머신러닝 기반의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할 것이라는 전망은 좋았고, 기술 진화로 인간 개인은 더욱 파편화되고 있고, 보이스 서비스로 인간과 인간의 직접 대화는 더욱 줄어들고 인간 소외가 더욱 가속화 될 가능성, 자본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IT업체의 독점 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는 전망하고 있다. 또한 아마존 같은 유통업체가 매우 큰 소비자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기 어려운데, 보이스 퍼스트 업체인 아마존 같은 유통업체의 힘이 강해질수록 생산업체는 유통업체의 하청업체와 유사한 지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며, 소비자가 가격 결정력을 잃을 수 있고, 보이스 인터페이스를 통해 상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아마존 에코의 경우 아마존과의 관련 제품 두어 가지만 제품 외에는 추천하지 않는 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즉 보이스 퍼스트로 인해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를 하청화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소비자 불이익이 커질 수 있다.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 또한 중요한 정보로 수집 분석되어 활용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최적의 상품이 추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스 인공지능 서비스 업체의 입장에서 최적의 추천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 개인별 가격 민감도와 지불 의사 등과 관련된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소비자의 주권은 사라지고, 정부의 기업에 대한 공정한 감시와 통제도 어려워 질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공론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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