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씩씩하게 -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일을 기다리는 법
김필영 지음, 김영화 그림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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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무심한 듯 씩씩하게>


나는 요즘 글을 쓴다. 하지만 글 같은 건 한 자도 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세상 모두에게 글쓰기가 필요하진 않다. 글 같은 거, 사랑 같은 거, 연애 같은 거, 용서 같은 거, 이런 것이 모두에게 필요하지는 않겠지. 인생은 답이 하나가 아니고, 심지어 그 여러 개의 답조차 시시각각 값이 바뀌고 있다.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건 결과가 아니고 태도다. 자신만의 자신을 믿는다는 것. 반짝이는 가방을 든 여자와 나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르지만, 사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p.116.


키친테이블라이팅을 읽어본 건 처음인 듯 하다. 에세이라 하면 이미 시, 소설로 등단해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들이 짧은 단상을 발전시킨 형태를 자주 읽었고, 아니면 이름난 에세이스트들의 작품을 간간이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선입견이지만 이번 책으로 처음 접한 작가에 대한 약간의 걱정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저자의 이력은 소위 말하는 문창과 출신의 걸출한 작가와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글이라는게 학문으로서 글을 배운 사람이(또는 어느 학문에 통달한 학자가) 멋들어진 문장으로 묵직하게 써내려가는 것으로서만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지금 내 주위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글쓰기 모임과 독서 모임과, 교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루어진 여기 이 물에서 보는 게 재밌다. 물고기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 다른 큰 물에 기웃거릴 마음은 아직 없다. 내 물 안에는 온종일 남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 물고기는 없다. 맑은 물이 좋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 물에서 논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지금 내 물에 살고 있다. 그 물고기들 덕분에 나는 가장 나다운 물이 된다. -p.186.


누군가 문학 독서의 의미를 묻는다면 핵심어는 간접경험으로 답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의미라 함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지평을 상상으로나마 밟아보는 것. 이제껏 내가 살아보지 못한, 앞으로도 걸을 일이 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고 그 궤적을 자주 궁금해하지만 물을 용기는 없는 내게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다양한 출신과 직업과 배경의 저자(화자)를 만나서 읽고 듣는 것 아닐까.


익숙한 휴대폰 가게로 돌아와서 익숙한 말을 건네며 소개팅을 한다. 익숙한 질문과 대답을 한다. 어제도 입은 흰색 블라우스와 연한 색 청바지를 입고서. 조금씩 다른 남자를 만나지만 그것 역시 비슷하고 반복된다. 그런데 그 웃음…… 집에 돌아와 그의 웃음을 떠올렸다. 보통 사람들은 표정이 먼저가거나, 혹은 뒤따라가는데 그는 표정과 말이 동시에 시작하고 끝까지 그 웃음이 함께 한다. 혹시 연습하면 되는걸까. 어떻게 살아오면 그런 것을 가질 수 있는걸까. 문득 그런 게 궁금해졌다. -p.98.

 

나도 언젠가 이야기로 한권 있지 않을까 가끔 생각하면서 얼마나 글쓰기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돌이켜보며 부끄러웠다. 바쁜 속에서 저녁 켠을 내어 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묵묵히 써내려간 그의 글들을 읽고나니 이만한 제목이 있나싶다. 분홍색 표지 위에 무심한 올려진 하얀 글씨가 마치 저자의 속에서 반복된 삶의 자세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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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뉴엘 - 마지막 숨결 현대 예술의 거장
루이스 부뉴엘 지음, 이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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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뉴엘>


 책은 루이스 부뉴엘이 스스로의 기억에 의존해 써내려간 반자서전적 회고록이다보통 평전류의 경우 연대기 순서로 시시콜콜한 것까지 정보가 과잉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역시 500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감독으로서 자신에 대해 궁금할 만한 부분 위주로 서술하여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오히려 부뉴엘의 삶이 이미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도로 떼려야   없는 관계라고   있다지극히 스페인적인 출생으로 (비범한 면은 있지만무작정 영화사에서 일을 하는 것에서 시작해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고할리우드 생활멕시코 생활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 자체다천재가 천재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이야기그리고 이미  지나고 나서야 회고하는 입장이라 그런지솔직하게 서술하는 점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지점이다현대의 비평가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정말 우러러   밖에 없는 존재들과 함께 하며 대등한 입장에서 서술했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름다운(?)협업이라기 보다는 주관이 강한 사람들의 묘한 연대라는 점에서 부뉴엘 감독의 왕성한 시기를 생생하게 느낄  있었다.


고백건대 부뉴엘 감독의 엄청난 명망 하에도 이제껏 그의 작품을 감상한 갯수는 한손으로 꼽힐 정도다좋지만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면 대개 공감할 것이다아니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난해함이 있기에나처럼 영화를 쪼개고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에 그의 책을읽으면서고맙게도  영화들을 제작 시기별로 끼워넣으며 제작 비하인드장면의 모티브들을 솔직하게 써주어서 그의 영화를 보는 자세를 달리하게 됐다지독한 몽상가로서의 그의 모습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의 모습과도 닮아있었고 거기에서 논리를 찾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오히려 그의 몽상가적인 측면꿈을 창작의 원천으로서 소중히 여기고 소상히  기억하는  자세에서 타고난 예술가의 면모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책의 백미는 19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이다물론 나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디테일하게 기록하는 편이지만 기록이 산재해있기도하고  모음을 소중히 하지 않아서 그런지 당장 내게 30쪽가량을 서술하라고 하면 아마도 손을  것이다대담하고 솔직함으로 가득찬  챕터는아마 내가 여러  펼쳐보게  거다언젠가 이런 작업물을 남기게 되겠지.


아마 남은 연말은 부뉴엘 감독의 이제껏   작품들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거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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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석양이 지는 별에서 - 화성을 사랑한 과학자의 시간
세라 스튜어트 존슨 지음, 안현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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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이 나를 문과와 이과의 갈래로 나눈 그 순간부터 우주는 나와는 더 더욱 먼 이야기가 되었다.(본격적으로 과학과 멀어졌다는 말이다)

어릴 적에는 우주소년단에서 행성의 특징을 공부하고, 태양계를 주제로 홈페이지도 만들곤 했던 꼬마가

지구 밖 이야기와는 아주 담을 쌓았는데, 이 책을 만나면서 10여 년을 가로질러 다시 동심을 찾았다.


처음에는 서정적으로 화성탐사와 행성과학에서 발견된 사실에 대해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조금 더 드라이한 느낌이었다. 전반부는 화성탐사에 대한 인류의 열망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져, 저자의 활동으로 보기가 어려워서 집중이 어려웠는데 막상 후반부를 읽을 때엔 이전 세대의 노력과 결실을 바탕으로 현 세대의 연구로 이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행정탐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취약한 독자에게는 전체적으로 방향을 짚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화성에서 왜 모래폭풍이 생길 수 있는지, 당연히(!) 화성연구와 관련된 칼 세이건의 비화, 화성 곳곳에 이름을 붙인 지도를 만든 스키아파렐리의 이야기처럼 주워갈 수 있는 지식도 많다.


지금은 스페이스X로 대변되듯 민간우주선 개발마저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달 탐사 전, 화성 탐사 전 만큼 인류가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저하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이다) 이제 화성은 '궁금한 곳' 보다는 '가보고 싶은 곳'에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이제부터는 밤 하늘 저 멀리 별이 보일 때 저자(세라 스튜어트 존슨)와 같은 행성과학자들이 모하비 사막처럼 척박한 환경에 찾아가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모습부터 떠오를 것 같다. 그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바탕이 되어 편하게 우주에 대한 지식을 얻어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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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을유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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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윤리)시간을 참 좋아했지만 유토피아를 읽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학교 다닐 때 접했던 유토피아는 몇 개의 도식에 불과했고, 시험 지문으로 출제될까 싶어 유토피아가 인공섬이라든지 생활상이 어땠지도 조금 외웠던 기억이 난다. 단순히 공동생산 공동배분을 골자로 하는 유토피아는 공산주의라고 오독했던 학자가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와서 전체를 읽으니 참 그게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유토피아>는 대화체로 구성되어 유토피아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한계를 지적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해설에서는 모어의 사고실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공감이 가는 표현이다. 분명 모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도 드러나만 이상사회에 대한 고민을 대화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상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봄직 한 책.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유토피아 사람들은 24시간 중 여섯시간만 일에 할당합니다. 이들은 오전에 세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두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세 시간 일을 하러 갑니다. 그 후에는 식사를 하고 8시에 취침하여 여덟 시간을 잡니다. 나머지 시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지만, 술 마시며 떠들거나 나태하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대개 이 시간에 자신이 즐겨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되 지적인 활동에 주력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새벽에 공개 강의를 하는 것이 굳어진 관습입니다. 학자들에게는 이 강의 참석이 의무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이 강의에 참석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강의를 선택해서 듣습니다. 그러나 지적인 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오직 자기 일에만 전념하는데 그것을 두고 뭐라 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공동체에 더 유용한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받습니다.

식사 후에는 한 시간동안 여가를 즐깁니다. 그들은 음악이나 대화를 즐기지만 주사위 놀음이나 바보같고 무용한 놀음은 모릅니다. 


모어가 이 책을 쓰기 전에는 100년 전쟁에 이어 장미전쟁이 30년간 이어졌고 양 키울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들이 농민들을 쫓아내는 인클로저까지 발생했다는 역사적 배경, 모어가 학구적인 인물이었을뿐 아니라 고위직을 맡았던 위정자이기도 했다는 사실, 에라스무스와의 지적교류 등을 알아가는 해설도 유익했다.

그리고 주석으로 처리되어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들이 참고자료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세민담 등 실어놓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조만간 구입하려고 했던 <팡세>도 을유문화사 판으로 구매해볼까 생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토머스모어 #이상사회 #이상국가 #플라톤 #유토피아 #을유문화사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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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음, 김유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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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와 함께 떠나는 예술여행하면 떠올리는 포맷이 있다. ‘미술관’을 기점으로 해서 유명한 몇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표현기법이나 사조에 대한 설명을 조금 하고 사생활을 소개(?)하는 것이다. 예술과 풍경은 저자와 같이 떠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서술한다.


나도 미술관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이 책에 관심을 가졌지만 여기에 소개되는 19개의 장소는 일반적으로 방문하기가 힘든 곳이 많다. 프랑스에 간다고 한들 파리의 미술관을 방문하지 도르도뉴 주에 있는 라스코 동굴까지 방문할 엄두는 못내는 것 처럼. 그래도 저자는 작품이 있는 곳까지 가는 여정 역시 미술의 일부로 보는 자신의 관점처럼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떠난다. 그 과정들을 지켜보면 집요한 여행자이지만 출발하는 시간과 긴장감을 싫어하는, 주저하는 여행자임도 볼 수 있어서 그 여정이 더 생생했다. ‘저는 직업이라 이렇게까지 가지만, 여러분들이 꼭 여기를 다 가야하는 건 아니에요.’같은 무겁지 않은 분위기도 한 몫했다.


읽는 동안 단번에 많은 장소를 둘러보고 여러 동시대 작가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볼 수 있어서 이 시국에 대리만족과 위안이 됐다.


아쉬운 동양에 대한 분량과 서술(일본 료칸의 격식이나, 중국의 비위생에 대한 소감만 기억에 남는다든지 솔직한 거라고 해두겠다), 한국에는 방문할 만한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 예천에 서보미술관을 짓는다던데, 그곳이 생기면 한국에도 한번 방문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본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예술과풍경 #다시그림이다 #마틴게이퍼드 #제니홀저 #앙리카르티에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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