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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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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문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향은 하이퍼 리얼리즘이었다.

빈부, 소수자, 여성, 인간관계 등 다양한 주제에서 보는 내내 답답함을 유발하는, 그러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보면서 공감과 감정적인 롤러코스터를 겪는 것도 의미 있지만 조금 다른 시선, 다른 메시지는 없을까 아쉬움이 있었다.


김혜진 작가의 이번 신작은 단편집이지만 현대인들의 고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집'을 매개로 벌어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흔히 '집주인'이라고 하면 수채의 건물을 가지고 폭리를 취하는 여유있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 속 집주인들은 자기 자신들도 겨우 빚을 갚고 있는 우리 주변의 흔한 인물들일 뿐이다.


그리고 해설 속 구절처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해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은 언뜻 정당해보이지만 실은 잔인한 요구이기 십상이다. 각자의 사정과 입장들 때문에 모두가 '착한 사람'이기는 어려운 세상임을 구조적으로 잘 짜인 설정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모두가 서로에게 착하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돌파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답은 표제작이자 책의 제목인 축복을 비는 마음에 있다. 누구에게나 잘해줄수는 없어도 각자 맡은 자리에서 다정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려는 태도가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님이 제시하는 엔딩은 제법 시도해볼만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독서를 마칠 때 쯤에는 꽤 희망적인 마음이 들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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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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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다. 르네 클레망의 <태양은 가득히>, 안소니 밍겔라의 <리플리>,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토드 헤인즈의 <캐롤>까지. 인상 깊게 본 서사의 원작이 하이스미스라는 한 줄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언젠가 그 이야기들의 원작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갖고있는 이미지는 빛나는 지중해의 파도, 잘생긴 청년들(디키와 리플리)의 하얀 리넨 셔츠, 요트 놀이, 속마음이 비치지 않는 리플리의 살인, 그 이후 숨막히는 긴장감 속 수습들 그런 것이었다. 시각적인 면과 스릴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체험이었지만 소설 속에서 1인칭 시각의 리플리는 어떻게 묘사되는지 내내 궁금했다. 다만 하이스미스가 한국에서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10년 넘은 판본밖에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물론 그 판도 영화 관련 책을 많이 내주시는 좋은 출판사에서 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너무나 아릅답게 재출간된 리플리 시리즈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2. 스튜디오 워크룸의 디자인으로 세련되게 완성된 표지는 5권을 모두 모으면 “Ripley”의 글자를 보여주고 있고, 페이지 넘버링과 서체마저 범죄스릴러 소설에 적합하게 아름답다. 영화들이 1권의 내용 정도만 담고 있을 정도로 1권만으로 충분히 완성된 이야기지만, 이렇게 5권이 모였을 때 전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면 소장 욕구를 자극할 수 밖에 없다. 260쪽 정도의 볼륨이지만 손가락을 딱 걸칠 정도의 타이트한 여백(내 취향이다)을 잡고 있기도 했고, 리플리의 내밀한 심리 묘사를 한자 한자 읽다 보면 400쪽 정도의 책을 읽는 듯한 밀도가 있었다. 을유문화사 책으로는 비코팅 표지를 자주 접했는데 책의 긴장도를 반영했는지 코팅 표지로 내놓은 것도(손에 땀이 많은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지점이었다.

 

3. 재능 있는 리플리는 소소하게 사기나 치고 한량처럼 살던 톰 리플리가 디키 그린리프의 부자 부모님의 의뢰를 받아 미국으로 디키를 데려오기 위한 임무를 받아 유럽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톰은 디키가 유럽에서 돈 많은 백수로 잘 살고있는 모습을 보며 강한 질투감을 느낀다. 심지어 생각처럼 디키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임무 수행은 어려워 보이던 차에 디키의 옷장에서 옷을 꺼내입고 흉내내는 장면마저 들키게 된다. 톰은 엉망이 되어버린 관계를 수습해보고자 이별여행을 기획한다. 그리고 요트 위에서 디키의 삶을 자신이 빼앗을 수 있다는 충동과 망상에 사로잡혀 그를 죽이고 만다. 그 뒤에는 디키의 행세를 하며 서명을 위조하고, 디키의 친구들과의 연락을 따돌리며 자신은 디키가 되고, 톰은 결백함을 유지하려는 온갖 노력을 다한다.

 

4.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고, 거짓말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한다. 누구나 현실 세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자기 나름의 노력도 하고 취향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굴레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낄 때 그 마음은 한계에 달할지도 모른다. 이야기 초반부의 톰 리플리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리플리가 될 수 있는 욕망의 씨앗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톰이 그 가치를 알고 있는 비싼 것들에 대해 일일이 소중함을 느끼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디키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면서.

 

5. 영화 추격자 이후로 쏟아졌던 사이코패스 살인자의 연쇄살인 이야기는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평범한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살인자의 맥락 없는 이야기는 살인 장면의 공포와 스릴에 초점을 둔다. 그런 와중에 1955년에 출간된 리플리를 다시 읽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저 사이코패스 살인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을 덮으면서 , 이 과정을 통해 톰 리플리라는 나쁜 놈이 결국 성공했구나하는 소감이었다. 하지만 해설을 읽으면서는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후속작 없이 끝내도 깔끔한 1권만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전체 5부작 속의 톰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톰은 디키를 찾아 유럽으로 오고, 살인을 저지르고, 수습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일련의 변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톰이 계획된 살인과 도피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살인의 과정이 아니라, 질투심, 열등감처럼 평범한 작은 감정에서 시작한 마음이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만을 믿어버리는 전환의 과정을 섬뜩한 내면묘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행복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엔딩을 맞이하더라도 인물들의 삶은 끝나지 않는 것처럼.


 톰 리플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앞으로는 자신이 얻었다고 생각하는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 권을 읽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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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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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접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펼치기는 쉽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은 유독 장벽이 높다고 느꼈기 때문에 제대로 완독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프닌을 두고 "나보코프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가장 애달프고 가장 단순한 소설이다.(브라이언 보이드, 나보코프 연구자)"라는 코멘트를 보고서 드디어 나보코프 입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첫 시작은 가벼운 유머와 비웃음이 어우러져 재밌으려나 싶었는데,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며 이내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나보코프는 러시아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노어, 영어, 불어를 어릴 적부터 구사할 수 있었다지만, 아마 그의 외국생활은 쉽지 않았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의 소설 이미지는 롤리타가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테라피 소설, 또는 자전적 소설로 일컫어지는 프닌을 읽는 것과 거리는 있었지만, 이번 책을 읽으며 사놓고 오래동안 방치해두었던 롤리타와 창백한 불꽃을 읽고 나보코프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나보코프에 한 발 들여서 볼 약간의 계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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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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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과 친화성이러한 떠남과 결합의 교차 관계를 실제로 보여   있는 경우가 중요하면서도 가장 눈에 띈답니다말하자면 이전에는 둘씩 결합되어 있던  개의 존재가 서로 접족함으로써지금까지의 결합을 버리고 새롭게 결합하는 경우들 말입니다이렇게 떠나보내고 붙잡고 이렇게달아나고 찾고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드높은 섭리를 실제로   있다고 믿는 거지요사람들은그러한 존재들에게 일종의 의지와 선택 작용이 있다고 인정하며따라서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조어를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p.60-61


친화력 1755 스웨덴 화학자 토르베른 베리만의 ‘선택적 끌림에서 빌린 말이다괴테도 자연과인간의 관계가 기계적인 인과관계로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원소들 사이의 분리와 결합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영역으로 보고 이런 표현에 관심을 가졌던  같다 소설은 파우스트에서 보았던 면모와는 달리 남녀 간의 복잡한 관계와 이끌림이를 막는 관습을 사각관계를 통해서 풀어낸다독일시골 귀족인 에두아르트가 젊은 시절 사랑한 샤를로테와 이루어지지 못하고 부유한 중년 여성과 결혼한다샤를로테도 다른 남성과 결혼을 하게되지만둘의 배우자가 죽고  뒤에 결합을 하게 된다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관계는 과연 꿈같지 않았고그러던  에두아르트의 친구(대위) 샤를로테의 친구 딸인 오틸리에가 집으로 오게되며 관계는 금방 흔들리게 된다대위-샤를로테에두아르트-오틸리에의 위험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의 본성적 욕망을 무시하지 않고시간와 주변 관계에 따라 쉽게 다른 형태가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 다소 회의적인 얘기를 한다관습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답을 주는 이야기는 아니다오히려관습의 존재를 포함한 인간의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지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바라본 소설이었다플로베르나 에밀 졸라 풍의 이야기를 자주 읽었지만 그와는 묘사 방식이 다른 것이 괴테만의 매력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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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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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선생님의 예전 작품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건축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온 적은 없었다. 유럽 등 외국여행을 가면서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을 느끼고 오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방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서울 보다도 더 획일적이고 유사한 건축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테다. 그럼에도 이렇게 건축과 관련된 일반 교양서를 읽으면서 건축의 어떤 부분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새로 깨닫는 바가 있어서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유튜브나 강의를 통해서도 유현준 선생님은 현재 한국의 건축과 관련된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시던 분이었기에 이러한 점을 따로 책으로 읽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면 어떤 신선한 건물들이 과연 건축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만 따로 모아서 도록처럼 쭉 구경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책이 마침 그런 컨셉에 맞추어 선생님이 건축을 공부하며 인상적인 건물로 꼽는 서른 개를 다루고 있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장점들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유럽에 한정되지 않고 미주와 아시아를 포함한 건물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일반인이 유튜브 같은 것을 보면서 건축을 좁게 알게 되면 르 코르뷔지에의 공 보다는 그의 등장 이후 건축이 삭막하게(?) 된 부작용만 생각하게 되는데 선생님이 꼽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들과 그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왜 그가 그만큼 건축사를 뒤흔든 인물인지 느끼는 바도 있었다. 그리고 건축물이 그렇게 지어진 의도를 생각하며 잘 준비된 사진과 도면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비록 책을 통해 입체적인 건축물을 평면적으로 보더라도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 근처를 들를 일이 있다면, 책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보는 모습도 충분히 그려진다.


요즘 개인적으로는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테리어의 유행에 편함(그대로 따르면 되니깐) 불편함(남들 하는 대로 한다고 내게 편한 아니더라) 동시에 느끼고 있는데 건축과 그에 포함된 인테리어에도 사람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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