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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연어낚시
폴 토데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백일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예멘 고지대의 밝은 햇살이 보이고 반짝이는 작은 물웅덩이에서 자갈 사이에 알을 낳는 연어가 보였다.” 영국 기후변화국 산하 국립해양원의 존스박사는 서서히 감화되기 시작한다. 찬 바다로 나갔다가 4~5년 후에나 한번씩 돌아오는 회귀성 어류, 연어를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막에서 낚시하게 도와달라는 이 비과학적이고 황당한 프로젝트의 본질을 깨달으면서.
결과는 백일몽이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한 해양과학자 개인차원에서 보면, 이 프로젝트는 삶의 목표를 잃고 소심했던 현실의 껍질을 벗고 ‘믿음(신념)’의 중요성을 깨달아 소망과 사랑을 찾는 치유의 큰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된다. 또한 그 여정을 함께 한 독자에게는 어떤 정치놀음보다도 소중한, 믿음으로 바꿀 수 있는 함께 꿈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체험하게 한다. 이 프로젝트는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 황당한 프로젝트의 탄생과 진행과정과 결말을 촘촘히 엮어낸 저자의 상상력과 삶을 관조하는 깊이에 끝없는 찬사를 보낸다. 책속에는 개인과 국가, 유럽과 중동, 과거와 미래, 과학과 종교가 픽션과 로맨스를 넘나들며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저자가 얻은 명성만큼이나 독자가 챙기는 독서의 즐거움은 두둑하고 과분하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여주인공 해리엇이 예멘의 족장을 묘사하는 부분은 족장이 풍기는 성자의 이미지와 족장이 추구하는 믿음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독자로 하여금 경외심마저 갖게 만든다. “내 의뢰인은 그냥 키 작은 미친 사람이 아니야. 미쳤다고 해도 정말 매혹적으로 미친 거라서, 거의 신성한 분에 가까워. 그분은 연어와, 아주 신기한 방법으로 끝없는 바다를 지나 고향인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여행이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자신의 여행을 상상한다고 믿어. 그분의 신이 누군지는 알고 있지? 족장님은 성자라고 불려도 좋을 것 같다.”
애초에 이 계획은 ‘낚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내용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존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이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족장은 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사막에서 연어낚시가 가능할까? 중)
족장이 추구하는 ‘믿음을 통해 신께 다가가는 기적’의 반대편에는 국제정세속에서 영국과 중동이라는 관계를 정치적으로 풀어가는 관료들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코미디처럼 얽혀가는 과정은 흥미를 넘어 스릴감마저 갖게 한다. “누군가 지도를 거꾸로 보는 바람에 이라크 사막에 있는 군사 훈련기지가 아니라 이란 병원을 폭격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오폭으로 인한 외교위기에서 수상의 홍보실장 맥스웰은 정치적 이벤트로 돌파구를 찾고자 고심한다. 그에게 보내온 외무부 동료의 제안 “연어낚시 어때요? 예멘에서요” 그 의도가 반대편에서 손내민 족장을 만났고 정치는 그렇게 낚싯줄에 걸린 채 프로젝트로 빨려든다.
존스박사의 결혼생활도 흥미롭다. ‘40대가 지나며 뭔가 그냥 지나간 듯한’ 허탈감을 갖고 있던 그가 직장에서의 승진과 야망으로 꽉 찬 아내 메리와 사랑의 신뢰가 깨져가면서 둘 사이엔 골이 패이고 벽이 놓인다. 해리엇의 약혼생활도 흥미롭다. 그녀의 약혼자는 이라크에 파병된 직업군인. 극비리에 이란으로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에 속해 있다가 실종된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군당국의 대응이 기가 막힌다. 소리없이 다가온 해리엇이 존스박사의 공허함을 서서히 채워간다.
존스박사는 족장으로부터 믿음을 갖는 법을 배운다. 그 믿음은 모든 문제를 치유하는 약이고, 믿음이 없다면 소망도, 사랑도 없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첫 걸음은 단순했다. 그저 신념 그 자체를 믿는 것이었다.
역자는 모하메드 족장이 왜 예멘 사막에 들일 물고기로 연어를 택했을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거슬러가는 역동성과 강인함?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 정확함? 역자는 그 해답을 연어가 주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서 찾는다. 연어처럼, 존스박사가 자신을 얽매던 현실의 부조리와 사고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선택으로 능동적인 삶을 선택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족장의 죽음과 함께 존스박사는 부활한 것이었을까?
2012년 4월에 ‘새먼 인 더 예멘’이 영화로 나왔다. 이완 맥그리거와 에밀리 블론트가 분한 영화를 포털에서 트레일로 맛봤다. 사막에 지어지는 대규모 수로공사와 사막에서 만나는 연어떼의 행렬, 족장의 성자같은 표정들이 인상적이다. 현업에서 은퇴한 65세 저자의 처녀작, 저자가 견뎌온 삶의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난 다양한 프리즘이 치밀하게 엮인 수작이다. 믿음의 아름다움이 연어들이 거슬러 갈 수로처럼 웅장하고 그 연어처럼 숭고한 은빛으로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