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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ㅣ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1
최진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인문학 왕초보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안내서이다. 숲을 보여주면서도 나무와 꽃의 아름다움이 현란하다. 인문학에 대해서 이 책에서 다룬 내용 정도만 알면 되겠다 싶다. 저자는 장 보드리야르부터 동양의 장자까지 42개의 생각을 정리한 ‘인문학의 지도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인문지식을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접목시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장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순서대로 한 번 읽고, 다시 거꾸로 한 번 읽기를 권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존하며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재의 철학자들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 플라톤, 맹자 등 철학의 기초가 되는 내용들이 후미에 배치되어 있으니 일반적인 순서라면 뒤에서부터 먼저 읽는 것이 맞다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철학과 문화를 비중있게 다루는 동시에 역사적으로 정치철학 및 과학철학 그리고 현대, 근대, 동서양 고전 등 현대사상의 기초를 훑고 있다. 아울러 인문특강 10강좌(총 6시간) 동영상 DVD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어 시청각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손닿는 곳에 두고 사전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고요한 하루를 얻어 깊이 있는 인문학 산책을 떠나도 좋을 문학, 역사, 철학의 종합 안내서다.
각 장의 사이사이에는 ‘덤&덤’코너를 마련하여 그 장에서 다룬 내용과 연관있는 사례들,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진 ‘확인하고 넘어가기’코너에서는 “출간 전 이 책의 내용을 접한 인문 왕초보 독자 중 많은 분들이, 읽을 때는 이해가 되었는데 읽고 난 후에는 내용이 헷갈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 넘어가기’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라고 하여 그 장에서 다룬 주요내용을 깔끔하게 되새기도록 제공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어느 전범의 재판과정에 참여했을 때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보며 당신의 죄는 ‘사고의 무능성’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라 주장하여 ‘악의 평범성’이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설명한다.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악에 이용당하고, 나아가 악을 돕는 관성의 폐해를 말한다. 이러한 사례가 비단 히틀러에게 복무한 독일전범들 뿐이겠는가?
문명충돌론을 주장한 헌팅턴은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로서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을 예견하면서 “특히 탈냉전 세계의 중요한 국제관계의 경연장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를 ‘문명의 가마솥’이라 표현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내용으로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을 다루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의 끈기가 대단하다. 26세가 되던 해에 현장연구를 시작하여 모두들 석 달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그곳에서 40년을 버텨낸다. 그녀는 연구자의 필수덕목이 천재성이 아니라 ‘끈기’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낯선 인간을 경계하는 침팬지 무리에게 다가가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때 그녀가 다가간 거리가 90m 전방, 90cm가 아니라 90m!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소개한 ‘칼 포퍼’의 사상은 대선을 앞둔 우리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열린사회를 판단하는 지표는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지배자를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 우리 한국사회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인간사회는 진보했지만 왜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죽어가는가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변으로서 경제학자 멜서스를 덤&덤에서 소개하고 있다.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가 빈곤하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그의 본모습은 역사상 최악의 무자비함을 보여준다. “교양있는 상류계급은 성욕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인구를 줄일 수 있지만, 가치 없는 하류계급은 성욕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기근, 전쟁, 전염병으로 죽어나가야 한다... 끔찍한 기근이 너무 자주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망률을 낮추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촉진하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빈민들에게는 불결한 습관을 권하고 도시의 골목을 더 좁히고 많은 사람들이 좁은 집에 살게 만들어 페스트가 잘 번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게 어디 학자가 할 말인가? 게다가 멜서스, 그는 목사였다.
‘헨리 조지의 사상과 한국의 자산’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산, 특히 토지자산에 대한 부의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한 수준임을 언급하고 있다. 부의 불평등 정도에 따라 편중이 심하면 1, 평등하면 0으로 지니계수를 표시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토지지니계수는 무려 0.85. 토지공개념과 종합토지세 부과 등의 역사적 사례가 있으나 모두 유명무실해 지고 점점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우리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무위하고 절로 자연하다 - 장자’편에서 소개한 무위자연의 유래 이야기가 재미있다. “예전에 자기의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 될 것을...” 그림자는 마라톤을 한다고 등산을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그늘 속에 들어가 쉬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었다! 오늘 문득 장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