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세계사
제프리 블레이니 지음, 박중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 동부지역에서였다. 지금의 케냐나 탄자니아가 있는 지역에 ‘호미니드’라고 불리는 인간들이 200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났다. 이들은 북쪽, 동쪽, 남쪽으로 기나긴 이주를 거듭하였다. 알래스카를 건넜던 이들은 대륙의 서안을 따라 계속 남하하여 아즈텍과 잉카문명의 뿌리가 되었고, 인도와 자와를 거쳐 폴리네시아로 갔던 이들은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에 문명의 씨앗을 뿌렸다. 그렇게 인류가 태어났다. 그러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며 각 대륙이 분할되는 지형적 변화가 있었고 대륙에 남은 인류는 고립되기도 하고 통합되기도 하며 인류사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서나 세계사와는 기본적인 틀부터가 다르다. 기존의 서적들이 정치와 제도라는 전형적인 구조속에서 정치권력의 흥망과 굵직한 역사적 사실의 소개에 집중한 채 지루하게 세계사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 이 책은, 지형, 문화, 종교 그리고, 인류사의 진화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그 안에서 발견된 의미있는 사건들을 마치 구연동화 하듯이 편안하고 흥미롭게 늘어놓고 있다. 저자는 이 한 권으로 인류사 200만 년 전체를 그리면서 동시에 ‘꽃도 새도 없어서는 안 될’ 인류의 진행방향을 제시한다.

 

  10년 전에 나왔던 ‘짧은' 세계사를 ‘더욱 짧은' 세계사로 수정・보완하여 다시 내놓은 이 책은, 세계사 전체를 단기간에 머릿속에 넣고 싶은 초보자나 기존의 역사기술에 흥미를 잃어 세계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리라 믿고 싶다.

 

  종교를 다루는 부분은 역사학자로서의 소신과 객관성이 돋보인다. 모세가 건넜던 홍해Red Sea의 원어가 갈대바다인Reed Sea 습지였고 실제 물이 얕은 부분이 많았던 지형적 특성과 이례적인 조석현상이 때때로 일어나기도 하였다는 것이 ‘바다가 갈라졌다’라는 성서의 기록에 대해 그가 내놓은 가설이다.

 

  또 예수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 당시에 모인 군중의 숫자가 몇몇이고 그들이 다 알아들었다면 그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크기였으며, 그 젊은 청년이 모든 율법을 정확히 기억하고 일식을 알고 언변이 뛰어난 웅변가였음을 주장한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신앙치료사 같은 존재감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라는 그의 설명이 재미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매우 똑똑했고 초승달을 비롯한 별들의 운행을 파악할 줄 알았으며 부유한 미망인 고용주의 도움을 얻어 메카에서 자신의 신조를 펼치게 되었다. 그는 이슬람을 창시했으며 초승달은 거의 모든 이슬람국가의 국기에 들어있는 문양이 되었다. 그는 나이 25세 때 자신보다 15세나 많은 그 미망인과 결혼하였고 여성에게 많은 빚을 진 그가 여성의 복종을 매우 중요시하는 종교의 창시자가 된 것이다.

 

  미국은 얼떨결에 탄생한 나라이며 ‘만약에’ 미국이 미시시피강 서부에서 멕시코만에 이르는 땅을 영국으로부터 에이커당 3센트에 사들이지 않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지 않은 채 북아메리카의 두 세 개 군소국가로 남았다면 세계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르게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제시한 ‘만약에’라는 관찰방법이 인상 깊고 재밌다. 세계사는 그렇게 사건이 모여 역사가 된 것이다.

 

  중국이 근대화의 시기에 갈갈이 찢겨 열강의 식탁이 되며 종이호랑이가 되었던 원인을 그들의 믿음과 관심에서 찾는다. 그의 제목은 ‘줄어드는 중국의 과학적 주도권’. 에스파냐,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 등이 바다를 휘저었던 반면, 중국은 바다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그들이 나침반은 발명했지만 미지를 향해 항해하겠다는 지속적인 열망을 품지는 못했음을, 그리고 지도 제작에도 솜씨가 있었지만 그들이 만든 최고의 지도는 어디까지나 농경 지역에 관한 소축척 지도뿐이었음을. 중국은 세계지도에도 바다건너 나라에도 관심이 적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름진 평야가 다름 아닌 세계의 중심, 동양의 에덴동산이고, 이 평야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절로 읽힌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467쪽에 달하는 전체분량은 ‘아주 짧은 세계사’라는 제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툼한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31가지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되어 있고 그러면서 서로 퍼즐조각처럼 머릿속에 짜맞춰지는 과정은 독서의 즐거움을 제대로 경험하게 한다. 그저 이야기로 듣고 흘렸다가도 다시 찾아보면 그 안에 재밌고 새로운 사실들이 가득 들어있다. 나의 세계사 공부는 이 책을 읽기 전과 이 책을 읽은 후로 크게 나뉠 것 같다. 세계사가 궁금한 모든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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