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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 한옥연구가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2년 12월
평점 :
토지주택공사와 리조트에 근무하였다가 소설을 쓰겠다고 퇴사. 한옥에 관심을 갖고 목수일을 배웠다가 연구가로 변신. 다양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한옥으로 세상읽기, 한옥 바깥에서 세상보기를 주제로 작고 아담한 책을 펴냈다. 포켓북으로 들고 다니면서 바쁜 틈새의 여유를 한옥과 함께 산책하기에 딱 좋을 책이다. 책도 저자가 주장하는 한옥을 닮아 삽입된 사진은 과묵한 흑백이고 저자의 잡문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한옥의 우수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은 철저한 역사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기에 그것에서 비롯되는 문화와 인문에 대한 인식 또한 폭넓다. 한옥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은 청동기 시대에 이미 마차바퀴를 만들었고 자를 이용해 표준화를 이뤘던 문화적 우수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국과 싸우고 교류하는 가운데에서도 독창적 가옥구조를 가꿔 왔으며 우리 문화의 중심에서 핵심가치를 형성해 왔다.
한옥은 기본적으로 열린 집이다.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집은 다시 자연을 끌어들이는 순환구조다. 한옥의 공간구성 원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소통’이다. 신과의 소통, 자연, 타인, 그리고 자신과의 소통. 결국 사람이 사는 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한옥의 구조에서 대청을 낳고, 채의 앞뒤로 마당을 만들어 공간끼리의 소통을 원활하게 돕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구들’이다. 구들이 우리 한옥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한옥에는 과거 지구상 어느 건축물서도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통합의 특징이 있다. 구들은 추운 지방에서 쓰는 시설이고, 마루는 더운 지방에서 쓰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두 시설을 하나의 건물에 담아낸 것이 한옥이다.
한옥의 디자인은 현대의 자동차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인정받는다. 한옥의 디자인은 ‘비대칭’이다. 한옥은 집요하게 대칭을 거부한다. 방과 부엌, 대청과 툇마루, 건물과 마당이 서로 바라보고 마주한다. 오히려 비대칭 아닌 것을 만나기가 더 어렵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짓는 것이 전통 한옥의 특징이어서 하나의 건물에서조차 앞뒤 또는 좌우의 높이가 다른 경우가 많다. 한옥에 숨은 두 번째 디자인 아이디어는 ‘생활’이다. 그래서 모난 조각이 없고 현란한 색이 없다. 그래서 한옥은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 같고 어느 밥과 어울려도 맛이 사는 김치 같다.
우리나라 사람은 전체를 조망하는 공간 감각 능력이 매우 뛰어나며 이유로써 한옥이라는 주거 문화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다른 나라의 집은 사람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데 치중했지만, 한옥은 자연에서 사람을 보호하는 데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옥의 지붕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날고 싶은 염원을 담아 기와와 서까래의 이름에 온갖 ‘새’를 붙여 놓았다. 막새, 드림새, 드르새 들이 그것이며 심지어 초가지붕의 이엉으로 쓰인 풀이름도 억새란다. 오직 자연으로부터 사람을 지키고, 하늘을 품으며 야트막한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한옥, 우리가 왜 ‘평화애호민족’이라고 불리는지는 우리네 사는 집을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