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에서 금강경을 근본경으로 했기 떄문에 금강경에 대한 선해(禪解)가 많이 전해 내려온다. 대부분의 선사들의 주석에서 부처님께서 아침에 의발을 수하고 걸식하고 돌아오셔서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는 이 경지야말로 최고의 경지요, 최상의 설법이다, 이것으로 금강경은 다 설해마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경우를 나타내고 있는 흥미있는 초기경이 있다. 바로 중부 제32 경인 Mahagosingasalasutta이다.
  여기서 사리불(Sariputta) 존자는 아난다(Ananda), 레와따(Revata), 아누룻다(Annuruddha), 대가섭(Mahakassapa), 목련(Mahamoggallana)존자에게 "벗이여, 고싱가 살라 숲은 멋집니다. 달빛 비추는 밤에다가 살라 꽃은 만개하였고 천상의 향기는 두루 퍼져있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모양새의 비구가 이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합니까?"라고 차례로 묻는다. 먼저 아난 존자는 "사리불 스님, 여기 비구가 있어 많이 듣고 들은 것을 잘 호지하고 들은 것을 잘 축적합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과 의미를 갖춘 완전히 성취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는 모양새의 법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하게 하고 마음으로 반조하고 견해로써 잘 관통합니다. 이런 모양새의 비구가 있어 고싱가 살라 숲은 빛이 납니다."라고 대답한다.
  레와따 존자는 "여기 비구가 한거(閑居)를 즐겨합니다. 한거를 즐겨하여 안으로는 마음의 삼매에 계합하여 선(禪)을 버리지 않고 위빠사나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묾을' 중득한 자입니다. 이런 비구가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누룻다 존자는 "여기 비구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으로 1000의 세계를 봅니다. 마치 하늘 눈을 가진 자가 궁궐의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 마차의 바퀴를 보듯이 그와 같이 비구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 눈으로 하늘 세계를 봅니다. 이런 비구가 있어 고싱가 살라 숲은 빛이 납니다."라고 대답한다.
  대가섭 존자는 "여기 비구는 걸식을 하고 걸식을 찬탄합니다. 분소의를 입고…찬탄하고, 삼의를…소욕을…지족을…노지에 머무는 것을…대중처 살지 않는 것을…스스로 가행정진하고 가행정진을 찬탄합니다. 스스로 계(戒)를 구족하고 계를 구족함을 찬탄합니다. 정(定)의 구족…혜(慧)의 구족…해탈의 구족…스스로 해탈지견을 구족하고 해탈지견의 구족을 찬탄합니다. 이런 비구가 있어 고싱가 살라 숲은 빛이 납니다."라고 답한다.
  목련 존자는 "여기 두 비구가 있어 법담을 나누는데 그들은 서로서로 질문을 하고 서로서로 질문을 풀이하여 중지함이 없어서 그들의 법담이 지속됩니다. 이러한 비구가 있어 고싱가 살라 숲은 빛이 납니다."라고 대답한다.
  다시 목련 존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사리불 존자는 "여기 비구는 마음을 제어하여 마음의 제어를 받지 않습니다. 오전에 머무름의 등지(等持,samapatti)로 머무르기를 원하면 오전에 머무름의 등지로 머무릅니다.(같이하여…한낮…해거름…) 마치 왕이나 왕의 대신이 여러 가지로 염색된 옷상자가 가득 차 있어서 언제든지 아침나절에 옷을 입기를 원하기만 하면 그 옷을 아침나절에 입습니다. …한낮에…해거름에…그러하듯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비구들은 세존의 견해를 듣기로 하고 세존께 가서 여쭙자 세존께서는 모두가 다 잘 말했다고 하시면서 바로 이 정형구로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싱가 살라 숲을 빛나게 하는 비구를 말씀하셨다. "여기 비구는 걸식에서 돌아와 공양을 마치고 앉는다. 가부좌를 하고 곧게 몸을 세우고 전면에 염을 확립하고서, '나는 내 마음이 취착을 여의어 번뇌로부터 해탈하지 않는 한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면서. 이런 비구가 있어 고싱가 살라 숲은 빛난다."라고.

<금강경 역해> 43~45쪽, 각묵 스님, 불광출판사

  
  누가 우리 사는 세상을 빛내게 하는가? 세상 속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능력은 세상에 빛을 던져준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빛내는 사람 중에서는 일상 생활에서도 마음을 다하여 생활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보다도 말이다. 나는 과연 생활의 모든 순간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가? 여러 편의 글들을 쓰다가,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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