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상상해 보세요. 그 시대로 돌아가 스페인풍 갈레온을 타고 카리브 해를 항해하고 있는 당신 모습을요." 콜린스가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말하며 자신이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 주었다. "당신은 멀리서 다른 배가 접근하고 있는 걸 깨달아요. 그 배를 더 잘 살펴보기 위해서 망원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깃발이 나부끼는 게 보이죠. 배가 가까이 올수록 그 깃발에 뭐가 그려져 있는지 알게 됩니다. 해골과 X자로 놓인 뼈다귀가 그려진 깃발이죠. 그걸 보자마자 당신에게 닥쳐올 경험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게 되는 겁니다."
  콜린이 설명했듯이 그 해적 '브랜드'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기억할 만한 경험에 의해 생겨나고 강화되었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전설적인 전투는 해적과 다른 배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일어났다. 해적 경험은 킬리가 주장한 경험 프레임워크의 각 단계를 가지고 있고, 대폭발에 이르기까지 단계마다 모든 강도의 속성을 띠고 있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이 해적 로고로 상징된다. 해적 로고는 보는 모든 이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낸다. "그건 브랜드가 나타내는 의미죠. '이제 넌 죽었어.'라는 뜻 말이에요." 콜린스가 말한다.
  해적들은 해적 깃발을 내걸 때마다 권총, 칼, 도끼, 그밖에 무시무시하고 다양한 무기가 총동원된 강렬한 전투가 일어날 것임을 알린다. 전투는 흉터와 이야깃거리를 가득 남기고, 기존의 전설에 더해져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브랜드의 뜻을 굳힌다. 훌륭한 경험 디자이너와 같이 해적들도 과장된 어조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해적들은 자신의 배를 과장되게 꾸미고 때로는 스스로를 그렇게 치장하기도 했다.(블랙비어드는 적들에게 겁을 주려고 모자 밑에 불붙은 도화선을 달고 다녔다.)
  해적들은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매우 능숙했고 자신들의 브랜드가 가진 의미에 부응했다. 콜린스는 해적들이 한 일은 결국 해골 깃발을 흔들어서 다른 배들이 화물을 물속에 던져 버리고 도망가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해적들은 모든 브랜드 마케터들이 꿈꾸는 일을 해냈다. 바람에 아무런 저항 없이 사람들이 넘어가 주는 것 말이다.


<글리머> 205~206쪽, 워렌 버거, 세미콜론

  디자인은 전문적 훈련을 쌓은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일까? 이 이야기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해적은 '해골 깃발'로 대표되는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세상에 각인시켰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했으며, 훗날 여러 미디어로도 남게 되었다. 해적들이 해골 깃발을 그리면서 이 모든 것을 의도하며 멋진 디자인을 의뢰했을 리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행동의 방향이 앞날의 일들을 열어준 셈이다. 나는 여기에서 디자인의 보편성과, 잘 계획된 행동의 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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