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누나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면서 왜 누나의 얼굴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걸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걸까. 왜 여기에 있는 나만이 여기에 있는 누나만을 특별히 생각하는 걸까. 왜 누나의 얼굴이며 뺨을 괴는 방식이며, 빛나는 머릿결이며, 내쉬는 한숨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지는 걸까. 태고의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인류가 나타나고, 그러고 나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설을 세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론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이, 내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펭귄 하이웨이> 386~387쪽, 모리미 토미히코(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정신

  이 책의 중반 이후부터는 잠시도 책장 넘기는 손을 쉴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책의 결말부는 아련하다. 기나긴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결말이다. 나의 심정을 주인공 아오야마는 더욱 더 절실히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부는 어디를 인용해도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그나마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법한(혹은 덜 될 법한) 이 부분을 골랐다. 말로 할 수 없는 이 감정은, 말로 할 수 없다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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