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생의 이야기에 한두 가지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묻자, 노인은 즉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해설을 하는데 마치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을 하였다. 노인은 내게,
"자네가 전에 한창려韓昌黎의 글을 읽었는데, 응당……."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자네가 전에 허생을 위해 전기를 짓겠다고 하더니, 응당 글이 완성되었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아직 손을 대지 못했다고 사과를 하였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내가 그를 '윤씨 어르신'이라고 불렀더니, 노인은 말했다.
"나는 성이 신辛가이지, 윤씨가 아닐세. 자네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구먼."
내가 뜻밖의 대답에 깜짝 놀라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은 색嗇이라네."
내가 그에게 따져 물었다.
"어르신의 성함이 어찌 윤영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지금 무엇 때문에 이름을 신색이라고 바꾸어 말씀하시는 건가요?"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가 뭔가를 잘못 알아 놓고는 남에게 이름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겐가?"
내가 재차 따지려고 했더니, 노인은 더욱 골을 내며 푸른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이 났다. 그제야 나는 노인이 바로 기이한 뜻을 품은 선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 망한 집안의 후손이거나, 유가가 아닌 이단의 몸으로 사람을 피하여 자신의 자취를 숨기려는 무리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암자의 문을 닫고 나오자, 노인이 안에서 '쯧쯧'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애처롭게 되었구나. 허생의 아내는 필경 또다시 굶주리게 되었을 터이지."
<열하일기 3> 245~246쪽, 박지원, 김혈조 옮김, 돌베개
이 글은 '허생전'의 뒤에 붙은 글이다. 허생전은 열하일기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허생전 소설 본문만 알고 있지, 허생전이 어떤 맥락에서 열하일기에 등장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윤영 노인(혹은 신색 노인)의 마지막 말이다. 허생의 아내는 또다시 굶주리게 되었을 터이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허생전에서 허생의 아내는 두 번 등장한다. 처음에는 허생이 학문을 그만두고 집을 나서는 계기로, 두번째는 집을 나간 허생을 기다리며 홀로 살고 있더라는 마을 아낙네의 말을 통해서이다. 이야기 전체에서 허생의 아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왜 여기서 윤영 노인은 허생의 아내를 이야기한 것일까? 왜 박지원은 저 언급을 실은 것일까?
유가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나왔다. 자신의 몸을 닦고, 그 후 집안(가문)을 꾸려 나가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 뒤에야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가의 핵심 도리이기도 하다. 허생은 자신의 재주를 통해서 한 나라의 경제를 들었다놓았다 했으며, 도적떼를 섬으로 데려가 살게 하고 굶주린 왜를 식량으로 구휼함으로 세 나라를 평안하게 했다. 허생은 가히 '치국'을 할 수 있으며 '평천하'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유가적인 입장에서는 그는 가히 완성된 인물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윤영 노인의 언급이 끼어들어가자, 전체 맥락이 이상해진다. '치국'과 '평천하'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제가'를 하지 못한다? 하긴 생각해 보면 허생은 10년 기한의 독서도 7년만에 그만두었다. 자신의 '수신'을 끝마치지도 못한 상황이다. 수신도 하지 못하고 제가도 실패한(아내를 굶주리게 만든) 그러한 사람이 치국과 평천하가 가능하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이는 즉 유가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을 뿌리부터 흔드는 이야기가 아닌가? 유가가 여태껏 주장해 온 나라 다스리기의 도리가, 그 뿌리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통렬한 논설은 아닌가?
열하일기는 청나라를 다녀오면서 박지원이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쓴 여행기이다. 이 여행기 속에서 박지원은 조선 선비의 입장을 두둔하는 척 하면서 슬며시 그들의 허례허식을 비난한다. 허생전에서 저 뒤의 언술이 없었다면, 허생은 우리에게 아직도 '아주 능력있는 능력자'로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 한 마디가 덧붙으면서 허생은 능력자인지 문제아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그 미스터리함은 윤영 노인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층층이 쌓여 있는 이 글의 의미를 온전히 알게 될 때는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