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성현은 모두 '개과改過' 즉 허물 고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심하게는 처음부터 허물이 없었던 것보다 오히려 낫게 여기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대개 사람의 정리란 번번이 허물이 있는 곳에 대해 부끄러움이 변해 분노가 된다. 처음엔 아로새겨 꾸미려 들다가 마침내는 어그러져 과격하게 되고 만다. 허물을 고치는 것이 허물이 없는 것보다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는 허물이 있는 사람이다. 마땅히 급하게 힘쓸 것은 오직 '개과' 두 글자뿐이다. 세상을 우습게 보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기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영예를 탐하고 이익을 사모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뜻이 같으면 한 패가 되고 다르면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잡서를 즐겨 읽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요, 새로운 견해 내기에 힘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다. 이 같은 병통들은 이루 다 꼽을 수가 없다. 한 가지 마땅한 약재가 있으니 오직 '개改'란 한 글자일 뿐이다.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정약용, <다산어록청상> 60쪽에서 재인용

  '사숙록'이라는 이 글뭉치의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나의 허물을 고치기 위해, 그리고 작은 생각들을 모으고 정리하기 위해, 때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돌이켜 보기 위해 이 글뭉치를 써 왔고, 만족스럽건 불만족스럽건 이제 백 일 기한이 일 주일 남았다.
  결국 그 동안 나는 글을 쓰면서 허물을 고쳤는가? 이 답에 그리 당당하지는 못하다. 허물을 고친 것은 그리 없고, 오히려 허물을 더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뿐이다. 하지만 그 동안 몰랐던 나의 허물을 알게 되었고, 사소하게 여겼던 허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는 있었던 것 같다.
  천천히 허물을 고쳐 나가자. 그 생각을 하며 이 글을 간단하게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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