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장에서 테러가 다른 폭력과 다른 점은 그 궁극적인 대상이 폭력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로마의 장군 티투스는 포로들을 단순히 아무 곳에서나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이 아니라, 성 안에서 버티며 저항하는 유대인들이 볼 수 있도록, 일부러 "성벽과 마주한 곳에서" 매달았으며, 이를 통해 그 장면을 보는 사람들에게 조속히 투항하지 않으면 "같은 운명에 처한다는 두려움을 주"려고 했다. 즉 테러의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요세푸스의 서술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에 남아 있던 저항군들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마음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로마 군인들의 잔혹한 행태를 보면서 오히려 느슨해진 자신들의 저항 정신을 더 조였던 것이다. 이것은 테러의 사용이 그 자체로 테러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특히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테러는, 바로 그것이 '테러리즘'의 핵심인데, 정치적으로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고함' 자체가 정치적 투쟁의 대상이고 결과인 것도 사실이다.)


<테러> 48~49쪽, 공진성, 책세상

  일벌백계라는 말이 있다. 한 명을 벌해서 백 명에게 교훈과 가르침을 준다는 뜻이다. 이 '교훈과 가르침'은 훈계자가 피훈계자에게 주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이는 테러가 테러리스트가 테러의 대상 혹은 궁극적 목표에게 주는 메시지의 구조와도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벌백계의 정당성은 누가 만드는가? 아무리 벌을 주고 야단을 치고 윽박지른다 해도, 그 대상이 그럴 만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 '교훈과 가르침'은 '테러'가 되는 것이 아닐까? 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는 한 번 생각해 볼 법한 주제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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