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毛詩에서는 "위정자爲政者는 이로써 백성을 풍화風化하고 백성은 위정자를 풍자諷刺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초상지풍 초필언'草尙之風草必偃,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는 것이지요. 민요의 수집과 『시경』의 편찬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백성들 편에서는 노래로써 위정자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지 않을 수 없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지를 보이지요. '초상지풍 초필언' 구절 다음에 '수지풍중 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을 대구로 넣어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이라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경』에는 이와 같은 비판과 저항의 의지가 얼마든지 발견됩니다. 「큰 쥐」(碩鼠)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내 보리 먹지 마라.
오랫동안 너를 섬겼건만 너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구나.
맹세코 너를 떠나 저 행복한 나라로 가리라.
착취가 없는 행복한 나라로. 이제 우리의 정의를 찾으리라.
<강의> 62~63쪽, 신영복, 돌베개
패관문학의 기원은 정치하는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의 민심을 알기 위해 민간에서 떠도는 노래와 이야기, 소문들을 수집한 데서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심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 백성들이 하는 이야기만큼 직접적인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백성들은 직접적인 이야기가 자기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비유와 풍자로 한두번 꼬았다. 문학의 발전에서 포악한 정치가 기여한 분량은 의외로 무척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감정을 직접 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노래와 시와 글로 옮겨져서 특유의 향취를 풍기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 법이다. 내가 앞으로 몇 년 뒤에 나올 우리나라의 시와 소설들을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