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그들을 쫓아버리게 된다. 지금의 나는 타인과 이야기하기를 바라는데도, 막상 그들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 우열愚劣함에 혐오감이 치밀고 노여움을 억누를 수 없다. 지금 너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도 여기서 홱 쳐서 떨어뜨리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치민다.
지금의 나는 만인을 경멸하는, 알맹이 없는 오만이 사람의 꼴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천구인 것이다.
이따금 이전의 내가 생각나곤 한다. 지저분하고 좁은 내 방이, 눈앞의 책상에 펴놓은 하얀 종이가, 그리고 그 종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듯이 나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쓸 수 있게 됐다 한들 이 산에서 내려갈 수가 없는데 그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완전한 고독에 갇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남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고 바라봤자 자신을 헛되이 괴롭힐 뿐이다.
<달려라 메로스> 36~37쪽, 모리미 도미히코, 시작
이 글의 화자의 모습에서 나는 내 지금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나는 텐구(천구, 일본의 요괴)인가? 나는 아직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여길 것인가?
타인보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속에 가득한가? 그렇지 않다, 고 대답하고 싶지만, 진짜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처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