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가 이렇게 만들어진 사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지만 구체적 사실이 국왕의 입에서 이렇게 또렷하게 제시되기는 쉽지 않다. 정조는 상소를 비롯한 정치행위에서 명목과 실상을 분간하고 정치적 배후를 캐는 경향이 아주 농후하다.
따라서 정조시대 정치에서 벌어진 많은 행위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국왕과 신료들 사이에 공작과 조율이 일정 정도 개입하고 있음을 『어찰첩』은 폭로한다. 그 결과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공식 역사기록과 정치적 행위를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신뢰하지 못할 부분이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어찰첩』은 정조시대 사료를 해석할 때 정치적 맥락을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촉구한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은 정조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국왕에게도 비슷하게 전개될 개연성이 있다.
<정조의 비밀편지> 78~79쪽, 안대회, 문학동네
정치의 막후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보면, 연극이나 드라마 무대의 뒷면을 보는 느낌이 든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담당자들, 감독과 연출, 조연출이 계속해서 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한 연출을 논의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점은 비슷한 듯 하다. 정조가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는 따지고 보면 그러한 '쪽대본'이나 다를 바 없는 물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왜 연출이 필요한가? 그냥 단순하게 협상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때로는 서로 의견의 완전히 엇갈려 평행선을 달리기만 할 뿐인 경우도 생긴다. 이때 누군가 나서서 '은밀하게' 다른 이득을 제시하여 한 쪽이 한 발 물러나게 할 필요도 생긴다. 하지만 그걸 공공연히 할 수는 없고, 그렇게 한 발 물러난 쪽이 진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드라마틱한 연출이다.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그러한 드라마에 너무나 길들여져서, 그 드라마가 진실인 것처럼 보는 것이다. 때로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자신의 드라마를 창작하기도 한다. '정조는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가 등장하고, 명성황후 민씨는 자신과 그 친인척의 커다란 잘못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국모'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러한 드라마의 세계는 어느 순간, 진실보다 포장이 중요시 여기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동북공정'과 '환국'은 그래서 서로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포장이 실제보다 큰 걸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역사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마 이들은 감자칩을 샀을때 질소가 가득한 걸 보면서 뛸듯이 좋아하는 사람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