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가 매우 좋은데다가 공부도 열심히 한다. 크면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어른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매일 착실히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우주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생물이나 바다나 로봇에도 관심이 있다. 역사도 좋아하고 훌륭한 사람의 전기 같은 것도 좋아한다. 차고에서 로봇도 만들어봤고 '해변의 카페' 야마구치 씨의 천체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도 해봤다. 바다는 아직 본 적이 없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탐험하러 갈 계획이다. 실물을 보는 건 중요한 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의 나 자신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 계산해보니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3000 하고도 888일이 남아 있다. 그러면 나는 3000 하고도 888일을 나날이 훌륭해지는 거다. 그날이 왔을 때 내가 얼마나 훌륭해져 있을지는 짐작도 못 하겠다. 너무 훌륭해져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모두들 깜짝 놀랄 거다. 결혼해달라는 여자도 많겠지. 하지만 나는 벌써 상대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결혼해 줄 수 없다.
미안하긴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펭귄 하이웨이> 9~10쪽, 모리미 토미히코(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정신
잠자려고 눕기 전에 그냥 책을 폈고, 책을 다 읽고,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책을 보고 난 뒤인데, 피곤은 잠깐 뒤로 미루는 게 마땅하리라.
이 책에 대해서는 감히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일 것이라 생각하고('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막상막하, 어쩌면 조금 더 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데 감사드려야 할 거 같다. 누구에게? 글쎄, 펭귄에게라도?
위 인용문의 '초딩'은 무척 건방져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초딩이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매일을 어제보다 더 훌륭해지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심지어는 어른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충분히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으며, 따라서 주인공 초딩이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은, 굳이 말하자면,(이것도 상당히 심각한 스포일러일 거 같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솔라리스'다. 책날개 띠지의 문구를 적당히 가공했다고 화내지 마시길. 정말로 이 말만큼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힘들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꼭 읽어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읽어봐 달라고 조용히 청하고 싶다. 피곤에 절어 있는 사람이 피곤조차 참아가며 횡설수설 글을 써 내려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어주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