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로 재주재를 삼고 기독으로 대원수, 성신으로 검을 삼고 믿음으로 방패를 삼'는다는 군사주의적 수사학은 기독교 중에서도 구세군의 교리와 깊은 친연성을 보이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교파와의 연관성이라기보다 민족 담론에서 기독교를 흡수하는 방식이 얼마나 전투적이고 격정적인 것인가를 이 글이 잘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민족 담론은 기독교가 담지한 종교적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충전받고자 했던 것일 터, 결국 종교적 교리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민족이라는 표상을 초월자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민족이라는 초월자는 신과 결부된 존재,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어떤 존재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각인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와 더불어 기독교는 민족주의에 청교도적 결벽증을 부여한다. 위의 자료에서도 언급되듯이, 기독교적 논리에 입각하면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도 죄지만, 나라를 빼앗긴것도 죄가 된다-'죄의식', '원죄'라는 관념의 등장. 따라서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전 국민이 회개하여 속죄하는 일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국권회복투쟁과 속죄의식의 결합이라?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47~48쪽, 고미숙, 책세상
솔직히 말해, 이 책의 필자 자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을 들뢰즈로만 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무척 흥미롭다. 약간의 들뢰즈 냄새가 풍기는 것을 감수하고 읽는다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민족이라는 담론이 어떻게 종교적인 관념과 결합을 하는가에 대한 이 논의는,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기독교 극우주의자가 '민족주의'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활동하면,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테러와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의 테러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게 말하기에는 나의 생각이 부족하다. 다만 민족과 종교라는 '성스러움'을 핑계삼아 희생당해야 했던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