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롤리는 절박하게 말했다.
  "이봐. 요점은 새가 산을 닳아 없애서 무(無)로 만들 때까지……."
  아지라파엘이 입을 열었다. 크롤리는 아지라파엘이 새들의 부리와 화강암으로 된 산의 상대적인 경도에 대해 지적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잽싸게 말했다.
  "……그럴 때까지도 자네는 여전히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있을 거라는 거야."
  아지라파엘은 얼어붙었다.
  크롤리는 잔인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넨 그걸 즐기겠지. 정말로 말이야."
  "어……."
  "자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이봐……."
  "천국엔 취미라는 게 없지."
  "그건……."
  "그리고 초밥집도 하나 없고."
  순간, 천사의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멋진 징조들> 86쪽, 테리 프래쳇, 닐 게이먼, 시공사 그리폰북스

  성서에 기술되어 있는 대로의 천국 모습이라면, 지상에서 우리가 즐기는 모든 재미는 거기에 대부분 없다. 이 소설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 작곡가는 리스트와 엘가밖에 없다(!). 락 음악?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먹거리? 먹을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탐식은 죄악 중 하나이다. 초밥집, 스테이크, 소화 잘 되는 고기, 술, 와인, 미식이라는 것이 천국에 있을 리 없다. 과연 천국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하다. 과연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들이 있가는 한 걸까?
  그렇다. '삶'이라는 것은 선한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악마와 같은 타락의 요소도 거기에 슬며시 섞여 들어간다. 금욕적 생활로 일체의 선함만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수행의 길이다. 수행은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는 아직 거리가 먼 행동이다.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하지만 그 속에서 때로 내가 행하거나 간접적으로 접하는 악한 것 역시도 인정하려고 애쓰며, 계속 생각하면서 행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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