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논의된 모든 상황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각오하고 이견을 제시했으며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몇몇 맥락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견을 제시했을 수도 있고,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출세하기 위한 훌륭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관행에 도전해 정치적으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그 도전의 결과로 좀 더 저명해지고 성공하게 된다. 맥케인 상원의원이 바로 그런 경우다. 맥케인의 성공은 부분적으로는 그가 공화당 지도부의 생각을 거부하면서 자주 이의를 제기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회가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지닌 수많은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기만 하면, 공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평판은 한 집단에서는 손상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집단에서는 강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148쪽, 카스 R. 선스타인, 후마니타스
소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말로 굳은 신념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그 소신을 통해 일종의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집단 안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는 집단 안에서 일종의 '소수파'가 된다. 그런데 그 집단에 대한 불만과 불평의 목소리가 늘어갈 경우, 집단 내부에서는 다양한 선택지로 고민을 하게 된다. 집단 전체를 모두 개혁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집단을 없애고 다른 집단으로 대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적어도 그 집단 내부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면 그나마 덜 아프고 빠른 결론은? 바로 집단 내부의 '소수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소수파'는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정치판에서 들려오는 소신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짧게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