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든 상관없이, 선택한다는 사실이 선택이라는 이유로 남겨진 것-삶이나 노동-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당신은 '삶'의 완전성보다 '노동의 완전성'을 선택했거나 자신의 복지보다 다른 행위목표에 우선권을 부여하려고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당신의 삶이나 복지에 중요하지 않다-당신이나 다른 사람에게-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아니다.
(주석: 이것은 심지어 개인의 선택이 행위목표들에 대한 완벽한 순위매김에 기반을 두는 경우에도 그렇다. 이 순위매김과 관련된 '최선'의 선택은 일반적으로 또는 특수한 선택 맥락에서 높게 평가된 고려사항들의 비중요성을 반영한다기보다 의사결정에 대한 당신의 적절한 '상쇄(trade-offs)'관을 반영한다. 또한 우리의 행위결정이 종종 완전한 순위매김이나 '최선'의 대안에 근거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선택하지 않은 쪽'이 실제로 특수한 선택 맥락에서조차 '높게 평가'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Sen(1970a, 1982a), Levi(1986) 참조].)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은 다양한 실행에 대한 개인별 비교를 이용하는 데 복지와 행위 측면이 매우 다른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사회가 개인의 복지에 대해 어떤 책임성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특히 그의 복지수준이 아주 낮은 위험한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가 이 사람의 다른 행위목표의 향상에도 똑같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구도 굶주려선 안 되며 심각하지만 명백히 치료가능한 질병에 대해 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보증하는 데 사회가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회가 개인의 행위목적-예를 들어 그가 특히 존경하는 영웅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 설령 그 사람이 잘 먹고 치료받는 것보다 동상 건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똑같이 보호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를 동반하지 않는다.


<불평등의 재검토> 130~132쪽, 아마티아 센, 한울아카데미

  복지에 대한 다양한 논쟁 중에서, '당신이 이 정책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 정책으로 인해 피해보는 특정 부류의 사람(혹은 막대하게 지출될 엄청난 세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잔인무도한 것이다'라는 비난이나, '나는 이런 정책을 내가 혜택받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돈으로 다른 걸 혜택받길 원한다'라는 주장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얼마나 옳은 것인가? 위 글이 그러한 주장에 일정 부분 해답을 준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특정한 정책을 정하느냐에 있다. 빈곤에 대해서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들었다. 절대적 빈곤은 말 그대로 의식주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빈곤을 말하며, 상대적 빈곤은 의식주 유지에는 문제가 없으나 소속된 사회 전반으로 보면 빈곤층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복지정책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그것조차 동의하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는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정책은?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상대적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생각일까? 이에 대해서 다양한 주장들이 있으며, 그 주장들 중 억지스러운 것이 아닌 것들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근거와 관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일방적 강요가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합의를 본다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물론 합의 과정 자체의 모순이나 여러 문제점 등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야기가 길어지게 된다.) 최근 복지에 대한 여러 뉴스들을 보면서 이 글로 생각을 아주 약간 풀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